한국주택학회와 지상좌담회…"과도한 개입과 잘못된 진단이 시장 왜곡"
정비사업 활성화하되 부작용 최소화해야…법 개정 위해 여야 협치 강조
민간 임대시장 활성화 중요…집값 하락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 주문도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차기 정부에서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부동산 정책이다.
5년 전 촛불 민심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가장 큰 원인으로 부동산 실정(失政)이 지목되는 만큼 '탈(脫) 문재인' 정책으로 차별화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연합뉴스는 이에 대선 다음 날인 10일 주택 부문 최고 권위의 학회로 꼽히는 한국주택학회의 내로라하는 대학교수·연구진과 긴급 지상 좌담회를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윤 당선인의 공급 확대·규제완화 등의 공약에 대해 왜곡된 시장을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일부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좌담회에는 이용만 한성대 교수를 비롯해 지규현 한양사이버대 교수, 경기대 김진유 교수,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남영우 나사렛대 교수 등 5인이 참여했다.
-- 우리 사회의 주택 문제는 과거 역대 정권의 최우선 과제였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 난제다. 원인이 무엇인가.
▲ 이용만(한성대 교수) = 현재 주택시장의 문제는 주택 자산으로부터 시작된 자산의 양극화와 주거 불안정이 커졌는데 과도한 대출 규제로 인해 이를 해결할 주거 사다리가 깨졌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주택부문이 충분히 대응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 중의 하나다.
▲ 지규현(한양사이버대 교수) = 그간 주택 경기가 위축될 때는 주택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경기가 과열될 때는 주거불안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해왔는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주택가격을 잡겠다며 규제만 고집해 주택시장의 기능을 왜곡시켰다.
▲ 진미윤(토지주택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역대 정부에서 제때 해소되지 못한 문제들이 적체되면서 정작 필요한 때 집을 구할 수 없고, 제때 사고 팔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결국 집에 대한 조급증과 불안심리가 커지면서 시장을 더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 김진유(경기대 교수) = 그동안 정확한 사실(fact)에 근거하기보다 정권의 생각과 직감에 의존해 정책이 수립돼 온 점도 반성해야 한다. 예컨대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는 오해에 근거해 공급을 게을리했고, 다주택자 대부분을 투기자로 오해하면서 전월세 시장 불안을 초래한 것 등이다.
▲ 남영우(나사렛대 교수) = 장기적인 문제를 5년 임기 동안 단기 내에 해결하려고 시도하다 보니 너무 많은 정책을 남발하고, 이로 인해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운 것이 문제다.
-- 문재인 정부 들어 29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 안정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원인은.
▲ 이용만 = 잘못된 진단에 잘못된 처방을 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는 수요 규제이면서 동시에 공급 규제다. 대도시 특히 서울에서 신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은 재개발·재건축과 도심복합개발 뿐인데 문재인 정부 들어 그걸 막아버리자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에 집값이 뛰었다.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 2법' 시행에 따른 전셋값 폭등은 결국 집값을 더 끌어올렸고 월세 가속화로 세입자들도 힘들게 했다.
▲ 지규현 = 집값 상승의 원인을 공급부족이 아니라 다주택자 투기수요 때문으로 규정하고 정권 초기에 공급을 소홀히 했다. 서울은 주택공급의 대부분이 정비사업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를 억제하면서 서울의 PIR(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이 18배로 치솟았다. '6·17 대책'에서 민간 등록임대주택사업자 제도를 폐지(아파트)하고 혜택을 축소하면서 중산층의 주거불안을 완충할 수 있는 민간 임대주택 공급의 역할이 퇴보했다.
▲ 진미윤 = 집값은 오르고 내리는 사이클이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가격 잡기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지나치게 잦은 대책을 내놨고, 이것이 시장의 변동성과 함께 내성을 키웠고 결국 불신으로 이어졌다. 다만 현 정부 들어 생애주기형 공공임대주택 확충, 주거급여 확대 등 주거복지 소셜 인프라를 구축한 것은 높이 평가받을 부분이라고 본다.
▲ 김진유 = 주택 공급부족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집값 상승의 원인을 다주택자, 투기자들에게서 찾고자 한 것이 문제였다. '공정·형평'만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불로소득 차단에 주력했지만 이는 역으로 집값과 임대료를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 차기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 김진유 = 왜곡된 제도를 바로 잡는 것이다. 양도세 중과, 과도한 대출 규제 등 비합리적인 규제를 없애 시장에 매물이 자연스럽게 증가하고 거래가 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재고주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 이용만 = 주택 공급이 충분히 이뤄질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부동산 조세를 조세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게 운영하는 것, 주거 사다리가 가능하도록 지불 능력 한도내에서 주택 대출을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 개선을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여야의 협치가 요구된다.
▲ 남영우 = 안정적인 주택 공급을 위해 현 정부가 추진해온 3기 신도시 공급과 함께 재건축·재개발 사업, 1기 신도시 등 리모델링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 지규현 = 집값과 전셋값 상승에 따른 주거불안의 충격 여파를 흡수하기 위해 분양전환하지 않으면서 월세에 기반하는 선진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사업을 활성화하고 지원해야 한다.
-- 윤석열 당선인의 부동산 공약들이 산재한 부동산 시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 이용만 = 도심 위주로 주택 250만호를 공급하겠다는 정책은 수요가 있는 곳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줄 것으로 본다. 다만 정비사업 확대는 임대 시장 불안과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진행해야 한다.
▲ 김진유 = 정비사업 규제 완화는 공급 확대를 통한 시장 안정을 기대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만 용적률 상향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500% 내외의 용적률을 단지형 아파트에 적용하면 주거환경과 경관에 부정적 영향이 커진다. 1기 신도시에도 마찬가지다. 제한적으로 특정한 지역(도심 역세권 등)에만 도입해야 한다.
▲ 남영우 = 소형 아파트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를 부활하고 지원제도를 재정비하겠다는 공약은 임대차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다만 임대차 3법은 시행 2년도 안 돼 지금 개정하면 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다만 일부 절차상 문제 등은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 진미윤 = 부동산 세제 개편은 주거정책의 종속적 수단이 아니라 사회의 재분배적 관점에서 접근하길 바란다. 임대차 3법 재검토 부분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전월세 상한제의 5% 인상 제한은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 있겠지만 전월세 신고제는 임대시장이 투명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 차기 정부에 바라거나 필요한 주택정책이 있다면.
▲ 이용만 = 최근 기준금리가 세 차례 인상됐고 강력한 대출 규제로 인해 패닉바잉에 나섰던 '영끌족' 청년층이 대출 금리 인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금리 인상, 집값 하락에 따른 채무조정에 대비해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만들어야 한다.
▲ 지규현 = 공공임대와 관련해 '대기자 명부'를 시행해야 한다. 현재 공공임대 물량이 나올 때마다 신청자가 매번 번거롭게 확인하고 지원해야 하는데 이 제도가 도입되면 1회 신청 후 대기하는 방식으로 전환돼 불필요한 행정업무를 줄일 수 있고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규모와 사양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 김진유 = 청년이나 신혼부부에 비해 저소득 취약계층 노인에 대한 구체적인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노인 빈곤율이 매우 높은데 소득이 급감한 노인들의 주거안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
▲ 진미윤 = 부동산 정책이 아닌 '주거정책'을 내놔야 한다. 국민의 주거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표'이고, 양질의 쾌적한 집을 많이 짓는 것은 '수단'이 돼야 한다. 주택 공급 목표는 순공급(net supply) 측면을 따져보길 바란다. 재건축·재개발 47만호 공급은 정비사업으로 멸실되는 주택을 고려할 때 순공급 관점에서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sm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