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선 반전여론 불식하고 정치선전 전파 목적"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건물을 폭격하는 등 '전쟁범죄'를 저지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러시아는 모든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민간 건물을 공격하거나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삼는다고 하는가 하면 원자로를 스스로 파괴하려 했다는 등의 좀체 믿기 어려운 주장도 펼치고 있다.
11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러시아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정부의 민간인 피해 주장을 일관되게 부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시 산부인과 병원 폭격이다.
마리우폴 당국은 9일 러시아군이 산부인과 병원을 폭격해 어린이를 포함한 3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폐허가 된 건물에서 만삭인 임신부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과 유혈이 낭자한 병상 등 참상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이 서방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하지만 이에 대해 러시아는 이런 사진은 조작됐고 병원은 이미 '민족주의 세력'(우크라이나 정부가 배후인 반러시아 세력)이 장악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결국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북부 하르키우(하리코프)에서도 민간 건물이 포격 당해 민간인들이 숨졌는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이 공격의 주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밀 무기로 군사 시설만을 공격하고 있을 뿐, 민간시설은 공격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러시아의 이같은 주장은 여러 증거를 종합했을 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서방 언론과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평가다.
그런데도 러시아가 굽히지 않고 신빙성 떨어지는 주장을 하는 것은 상반된 주장으로 자신의 취약점을 '물타기'해 진흙탕같은 진실공방으로 만들어 '전범' 책임에서 회피하려는 의도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이런 러시아의 태도에 대응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민간인 공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왔고 이를 통해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러시아가 국영 매체나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적극 홍보해 자국 내 반전 여론을 잠재우려는 선전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가 거짓 정보를 퍼트리는 선전전은 국제사회에선 안 통할지 몰라도 자국 내에선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등의 효과를 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CNN방송도 11일 "러시아 국민 상당수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을 잘 알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영국 비영리기구 정보탄력성센터(CIR) 피에르 보 연구원은 "정부의 프로파간다는 국민의 (잘못된) 인식과 결합할 때 제대로 작동한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러시아가 민간인 건물을 공격하면서 '신나치주의자들'이 그곳에 중화기를 배치하고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았다고 한 주장은 상당한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해 외곽 건물에 불이 붙는 아찔한 상황을 만들고도 오히려 우크라이나군이 원전에 불을 냈다는 주장도 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자포리자 원전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다고 밝히면서 원전을 공격한 것은 오히려 원전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항변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보 연구원은 "전혀 말이 안 된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핵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한다면서 이를 원전에서 대놓고 할 이유가 없다"라며 "하지만 이런 주장이 지금 러시아 국영TV에서 버젓이 방송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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