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대부분 인간에 유용…"식물다양성 줄면 선택권도 줄어"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인간의 활동이 식물 세계에서 '승자'(winner)보다 '패자'(losers)를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나 생태계 파괴 등으로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수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e)에 따르면 산하 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이 관다발이 있는 식물군인 관속식물 8만6천여종이 인간 활동으로 받은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학술지 '식물, 인간, 지구'( Plants, People, Planet)에 발표했다.
인간의 활동이 환경 조건을 대규모로 바꿔놓는 '인류세'(人類世)로도 지칭되는 시대에 인간 활동이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돼 번성하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세력을 잃고 멸종의 길로 들어서는 식물이 있게 마련인데, 그 분포를 조사한 것이다.
연구팀은 자료가 충분히 확보된 관속식물의 약 30%에 달하는 총 8만6천592종을 대상으로 분류 작업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식물 종을 승자와 패자 이외에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종인지 여부와 미래 전망, 이미 멸종된 식물 종 등 총 8개 범주로 분류해 분석했다.
그 결과, 현재 패자가 승자를 압도하고 앞으로도 인간의 영향력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나타났다.
패자로 분류된 식물 종은 총 2만293종에 달했으며, 대부분이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은 식물로 나타났다. 승자 식물 종은 6천913종에 그쳤으며 164종을 제외하곤 모두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 범주에 속했다.또 인간의 영향력이 지속하는 것을 가정했을 때 미래의 잠재적 패자 식물 종은 2만6천2종, 승자 식물 종에는 1만8천66종이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화 계통도를 통해 승자와 패자 식물 종의 분포를 따진 결과, 모든 식물 목(目)에 걸쳐 고르게 분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일부 소규모 진화계통에서 승자나 패자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나타났는데, 특히 소철류와 삼나무 등을 포함한 사이프러스 과(科), 아라우카리아 과 식물의 멸종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식물 종이 많지 않고 패자 종이 많은 진화 계통에서는 멸종으로 이어져 식물 다양성을 위축시킴으써 자연 생태계가 변화나 어려움에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명예 식물 큐레이터 존 크레스 박사는 "승자 식물 종 목록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종만 골랐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식물 전체로 놓고 볼 때 미래에는 더 줄어든 식물에서 선택해야 해 숲을 복원하거나 신약 물질이나 새로운 식량, 신상품을 개발하려고 할 때 인간이 가진 선택폭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창밖을 보면 여전히 푸르러 식물이 잘 견디고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우리가 현재 거대한 식물 다양성 상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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