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러 정보기관, 국내 구글·애플 임원 추적해 협박"

입력 2022-03-13 11:41  

[우크라 침공] "러 정보기관, 국내 구글·애플 임원 추적해 협박"
집·피신처 찾아와 "푸틴이 화낸 앱 삭제 않으면 감옥행" 협박
푸틴, 우크라 침공 앞두고 언론·소셜미디어 '재갈 물리기' 조치 차근차근 밟아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작년 9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구글 최고위 여성 임원 자택으로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요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스마티 보탱 앱'으로 불리는 앱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며 24시간 내에 이를 내리거나 아니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최후통첩을 전했다.
이 앱은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에 반대한다는 항의 투표를 하고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지지자들이 총선에서 승리할 가망이 높은 후보를 선별할 수 있도록 돕는 앱이었다.
구글은 이 여성 임원을 재빨리 한 호텔로 피신시키고 가명으로 투숙하게 했다. 다른 손님과 호텔 보안요원이 있으니 안전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얼마 뒤 똑같은 요원들이 방까지 찾아와 '시간이 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몇 시간 뒤 이 앱은 구글과 애플의 앱스토어에서 사라졌다.
애플의 러시아 최고위 임원 역시 비슷한 사건을 겪었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현지시간) 익명의 관계자들을 인용, 이런 소식을 전하며 "미국 정보기술(IT) 거인들이 크렘린의 교범에 쓰인 가장 원시적인 협박 전략에 무릎을 꿇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강화한 더 광범위한 작업의 한 갈래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두고 작년부터 이미 내부 반발의 원천을 무너뜨리려는 활동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WP는 이런 작업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놓고 전 세계적 비판 여론이 이는 가운데에도 푸틴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또 지난 1년간 푸틴 대통령이 독살 기도에 실패한 최대 정적 나발니를 감옥에 가뒀고, 독립 언론매체를 존폐의 기로로 내몰았으며 크렘린 지휘 아래 '러시아판 페이스북'으로 불리는 'V콘탁테'를 국영기업을 통해 인수하는 한편 인권단체엔 청산 명령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내부 전투'를 수행하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외국 IT 기업들을 굴복시키려는 조치들도 내놨다.
러시아는 러시아인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는 새로운 기기를 도입했고 크렘린의 검열을 거부하는 회사에는 총 1억2천만달러(약 1천485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으며 13개 세계적 IT 대기업에 직원을 러시아에 남겨두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남은 직원은 체포나 처벌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다. 미국의 임원들은 이 조치를 두고 '인질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런 조치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그저 러시아가 권위주의로 퇴행한다는 신호로 여겨졌지만 지금 러시아에서 진행 중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옛 소련식 억압의 사전 정지작업 역할을 했다고 WP는 분석했다.
러시아의 언론에 대한 탄압은 우크라이나 침공 후 더 악화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접속이 차단됐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특별 군사작전'으로 묘사한 크렘린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하는 뉴스는 모두 '가짜 뉴스'로 전락해 최고 15년 징역형에 처하는 새 법이 시행된 뒤 수년간 정부의 억압을 견뎌왔던 뉴스 매체들은 문을 닫았다.
뉴욕의 러시아 싱크탱크 현대러시아연구소(IMR)의 대표 파벌 코도코프스키는 "푸틴이 소련 시절로의 회귀를 바란다고 말하는 게 과장된 각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지정학적 권력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국가 내부에 대한 전면적 통제의 측면에서도 그렇다"고 말했다.
실제 이런 언론 통제가 효과를 내고 있다는 단서들도 있다.
설문조사에선 러시아인 대다수는 전쟁을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또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서방 언론의 러시아인 인터뷰를 보면 이번 공격이 우크라이나의 나치 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것이란 크렘린의 '거짓말'을 일관되게 되풀이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sisyph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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