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희생 피하려 시가지 초토화 작전 펼 가능성 높아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주째에 접어들면서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방어선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어 머지않아 러시아군 탱크와 병력이 키이우 시내로 밀고 들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텔레그래프는 14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시가전이 벌어지면 방어군의 이점을 누리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지만, 이를 잘 아는 러시아가 압도적인 화력을 동원해 초토화 전략을 펼친다면 엄청난 민간인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대도시의 시가전은 공격군에게 매우 불리하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복잡한 시가지에서 현지 사정과 지리에 밝은 적과 싸우려면 병사들의 훈련 수준이 매우 높아야 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에 투입된 러시아군에는 젊고 경험 없는 병사들이 대부분이다.
시가전에서 통상 방어군은 도로를 철재와 콘크리트로 봉쇄하고 탱크 진격을 방해하기 위한 참호를 파는 것은 물론 철조망으로 지체된 탱크나 장애물 제거를 위해 선두에 나선 공병 차량을 파괴하려고 곳곳에 화망을 구성한 채 전투에 대비한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은 일반적인 방어군의 이점에 더해 서방으로부터 지원받은 우수한 대전차 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 영국과 스웨덴 합작품인 NLAW는 발사할 때 후폭풍이 거의 없는 대전차 미사일 발사 장치다. 따라서 도시에 있는 모든 빌딩의 어느 방에서건 발사할 수 있는데 이는 탁 트인 지형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적의 반격에 노출되기 쉬운 다른 대전차포에 비해 대단히 큰 이점이다. 미국이 제공한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의 성능도 이에 못지않다.
우크라이나군 탱크도 골목에 숨어 있다 러시아군 대열이 지나가면 근처 빌딩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군 병력의 엄호를 받으며 적군 측면을 공격할 것이다.
국제전쟁학연구소의 벤 배리 연구원은 시가전의 특성상 공격군이 방어군을 압도하려면 최대 9배의 병력을 보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많은 군사전문가는 러시아가 이 정도 수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지 의문을 표시한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출신의 이고리 브세볼로도비치 기르킨(51) 도네츠크인민공화국 국방부 장관도 최근 텔레그램 글에서 "공격군과 방어군의 병력 비율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우세하며 그 우세는 날로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의 초기 계획은 "과도하게 낙관적"이었다면서 "부분적인 동원체제를 가동하지 않는다면 이 전쟁은 몇 년이 지나도 러시아가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시가전이 아니라 도시를 포위해 맹공을 퍼붓는 양상의 전투라면 지상군이 특별히 유능할 필요도 없고 방어군으로서 우크라이나의 이점도 사라진다. 배리 연구원은 "이런 경우 지상군은 대포와 로켓 발사대를 보호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만 있으면 된다"면서 직접 교전할 수 없고 포위 공격과 공습을 당해야 하는 상황은 우크라이나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도 전쟁 종식의 양상을 시나리오별로 조망하면서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점령하려면 무자비한 폭격과 수 주 또는 수개월 동안 가가호호를 상대로 펼치는 시가전을 결합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예비역 제독은 뉴욕타임스에 "이 경우 러시아는 대단히 비싼 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피하고자 푸틴은 미사일과 대포, 폭탄으로 도시에 맹공을 퍼부음으로써 21세기에 목격된 최악의 전쟁범죄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푸틴 대통령은 이미 시리아 내전과 체첸 침공에서도 인구 밀집 지역에 대한 폭격은 물론 민간인 인명피해를 적군에 대한 지렛대로 활용코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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