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SS 사용했던 문양…"확인 안 된 상징물로 즉시 삭제"
우크라 민병대 내 극단주의 세력에 '나치 관련 역사' 잔재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세계 여성의날(3월 8일)을 맞아 가슴에 '검은 태양' 휘장을 단 우크라이나 민병대 여군의 사진을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가 급히 삭제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검은 태양'은 과거 독일 나치 친위대(SS)가 상징으로 사용했던 문양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 중 하나로 '탈나치화'를 언급한 바 있다.
◇ 나토, 네오나치 상징 단 우크라 여군 트윗했다 삭제
나토는 지난 8일 공식 트위터 계정에 다양한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4장을 올렸다.
"세계 여성의날에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놀라운 여성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강인함, 용기, 회복력은 우크라이나 정신의 상징"이라는 글과 함께였다.
하지만 나토는 수 시간 뒤 사진을 삭제했다. 가슴에 '검은 태양' 휘장을 단 우크라이나 민병대 복장의 여군 사진이 문제가 됐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이 여군이 가슴에 단 휘장이 과거 악명 높은 나치 SS가 비밀스러운 상징으로 사용했던 문양이며, 지금도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세력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사진 속 여군이 입고 있는 군복과 휘장은 푸틴 대통령이 '탈나치화'의 표적으로 삼고 있는 우크라이나 '아조프 연대'의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 고위 관리는 실수를 인정하면서 뉴스위크에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징물이 포함된 것을 발견했고 즉시 삭제했다"고 말했다.
애초 이 여군 사진은 지난달 중순 우크라이나군 참모본부에 의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처음 공개됐고, 이후 많은 SNS 이용자들에 의해 널리 확산했다.
뉴스위크 일본판에 따르면 '검은 태양'은 요한 묵시록의 해석에 따라 중세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이상국가 '제3 제국'의 문장으로, 나치 SS가 신성시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나치 제3 제국이 붕괴한 뒤에도 극우세력 사이에 계승됐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율리안 슈트루베 조교수는 "'검은 태양'의 개념은 1950년대에 나치 잔당과 네오나치 세력 사이에 SS의 비밀의식에 참가했던 나치 엘리트 그룹과 그들이 가진 초자연적인 힘과 연관된 것으로 널리 회자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내에 '검은 태양' 휘장을 달고 다니면서 백인 우월주의와 극단적 민족주의를 신봉하는 네오나치 세력이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당국이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도 한 아조프 연대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에서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진 네오나치 민병대 조직이다.
나토가 이 민병대 소속으로 추정되는 여군 사진을 트윗했다가 황급히 지운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뚜렷한 선악 구도로 인식하는 대중들의 시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15년에 제정된 법에 따라 나치즘뿐 아니라 공산주의의 상징도 공식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슈트르베 교수는 "만약 우크라이나인이 아조프 연대가 문양으로 사용하는 '검은 태양' 휘장을 달고 있다면 조직의 일원이나 지지자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SS 수장'의 고향에 있던 문양…"네오나치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사용"
'검은 태양' 문양은 1940년대 나치 제3 제국 시절 독일 북서부의 베벨스부르크성 바닥에 그려져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베벨스부르크는 SS의 수장이던 하인리히 히믈러의 고향이기도 하다.
당시 히믈러는 바닥에 '검은 태양' 문양이 새겨진 이 성에서 비밀스러운 종교적 의식을 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날까지 나치의 상징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문장은 '하켄크로이츠'라 불리는 갈고리 십자가지만, 이 상징은 대부분의 서방 국가에서 사용이 금기시되고 있다.
반면 '검은 태양'은 일반인들 사이에 그 의미나 유래가 덜 알려진 편이어서 지지자들 사이에 공유가 용이하다고 한다.
슈트루베 교수는 "베벨스부르크성의 장식을 보면 이 상징이 SS와 연관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단지 문양일 뿐인지 아니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며 "'검은 태양'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지금은 극우 또는 네오나치만이 이 기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마크 핏캐비지 반인종주의연맹 극단주의센터 선임연구원은 "'검은 태양'은 많은 문명에 공통된 고대의 상징이며 다양한 변형을 가지고 있다"며 "'검은 태양'이 나치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SS가 그것을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은 엘리트의 상징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치의 제3 제국이 붕괴한 뒤 네오나치와 다른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나치가 사용하는 많은 상징을 받아들였다"며 "최근 5∼6년 사이에 '검은 태양'은 백인 우월주의자들 사이에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토가 여성의날을 기념하기 위해 올린 트윗에 '검은 태양' 휘장을 단 우크라이나 민병대 여군 사진이 포함됐던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나치와 연관된 어두운 역사가 있다.
나치 독일 점령 기간이던 1941∼1944년에 스테판 반데라같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자들은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나치와 손을 잡았다.
소련이 붕괴하고 마침내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쟁취한 1991년 이후에도 빅토르 유셴코 전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지도자들은 반데라의 유산을 높이 평가했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나토 가입을 지지하는 친서방 정권이 수립됐을 때 "극우 세력에 의해 시위가 주도됐다"고 비판했고, 이는 결국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역사적 뿌리가 깊은 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자 혹은 친나치 세력은 지금도 우크라이나군이나 아조프 연대 같은 준군사 조직에 존재한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수군사작전이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를 위한 것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침공 정당화 발언은 '선전'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들의 일치된 입장이라고 뉴스위크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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