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사법부 "나이, 건강 고려"…이란혁명으로 영국이 못 갚은 부채 상환
어린 딸 둔 자선단체 활동가 6년만의 귀국 소식 전하던 BBC 앵커 울컥
(런던·테헤란=연합뉴스) 최윤정 이승민 특파원 = 이란에서 체제 전복 모의 죄로 6년 가까이 감옥에 갇혀 있으며 여론의 큰 관심을 받아온 영국 자선단체 활동가 나자닌 자가리-랫클리프가 석방됐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은 16일(현지시간) 자가리-랫클리프와 역시 약 5년간 잡혀있던 활동가 아누셰 아수리가 영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트러스 장관은 모라드 타바즈도 4년 만에 풀려났지만 아직 출국허가를 받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영국-이란 이중국적자다.
로이터·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의 자비홀라 호다이안 사법부 대변인도 "수감자들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고려해 조건부 석방을 승인했다"고 확인했다.
이란 국영 IRIB 방송은 영국과의 협상 후 오랜 부채 문제가 해결됐고, 자가리-랫클리프는 이날 풀려났다고 보도했다.
다만, 아미르 압둘라히안 이란 외무부 장관은 영국이 며칠 전에 빚을 갚았다면서 이번 석방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영국인과 결혼한 자가리-랫클리프는 2016년 4월 두돌이 안 된 딸과 함께 친정 가족을 만나러 이란을 방문한 뒤 영국으로 돌아가려다 공항에서 체포됐다.
그는 영국 자선단체 톰슨로이터재단의 프로젝트 매니저였으나 재단 측은 그가 이란에서 일을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 정권을 '조용히 전복'하려는 계획을 짜 안보를 위협한 혐의가 인정돼 2017년 1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자가리-랫클리프는 지난해 3월 형을 마쳤으나 이란 사법부는 다른 혐의로 그를 기소해 징역 1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아수리는 2017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를 도운 혐의 등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에빈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다.
트러스 장관은 이들 석방과 43년 전 이란에 갚지 못한 빚 상환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6개월간 집중적인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이 부채는 1979년 이슬람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영국이 이란 팔레비 왕정과 맺은 전차 도입 계약과 관련해 발생했다.
1976년 당시 팔레비 왕정이 영국 전차 1천500대를 사기로 계약하고 대금을 지급했지만, 185대만 인도되고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나자 영국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다.
이란은 꾸준히 영국에 미인도분에 대한 대금을 환급하라고 요구했고, 2002년 영국 법원에 이 돈이 공탁됐지만, 이란으로 송금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미국의 제재를 이유로 4억 파운드 규모 부채를 상환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영국 정부는 이번에 빚을 갚으면서 자금이 인도주의적 목적으로만 사용돼야 한다고 단서를 붙였다.
영국 언론 매체들은 자가리-랫클리프 석방을 머리기사로 다루고 있다.
BBC 뉴스 진행자는 그가 7살 어린 딸 곁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감정이 북받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자가리-랫클리프의 남편은 단식 투쟁을 하고 딸과 함께 이란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면서 여론의 관심을 끌고 정부의 석방 노력을 촉구해왔다.
자가리-랫클리프의 남편은 딸이 공항으로 엄마를 마중 나갈 때 들고 가서 보여줄 장난감을 골라놨다고 말했다고 BBC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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