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으로 16분 격정 연설…비행금지구역 설정·전투기 지원 재차 요청
"美 진주만, 9·11 테러 기억해야" U24 구성 제안…美의원들 기립박수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평화를 지키는 세계의 지도자가 돼 달라고 간곡히 호소하며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미 상·하원 의원들을 대상으로 16분 남짓 진행한 화상 연설에서 세계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평화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군용 티셔츠 차림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다'는 연설 문구를 인용한 뒤 "나에겐 필요가 있다. 나는 우리의 하늘을 지킬 필요가 있다"며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라는 요구를 상기했다.
이어 "이것이 너무 과한 요구라면 대안을 제시하겠다"면서 S-300과 같은 대공 미사일 방어시스템과 항공기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은 비행금지구역 설정이나 전투기 지원이 긴장을 고조시켜 서방과의 전면전 가능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금이 우크라이나와 유럽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라고 한 뒤 "우리는 지금 당장 여러분이 필요하다. 더 많을 일을 할 것을 촉구한다"며 러시아의 침공이 멈출 때까지 제재를 부과할 것을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이 러시아의 모든 정치인을 제재하고 미국의 모든 기업이 러시아를 떠나야 한다며 "러시아인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파괴하는 데 사용할 단 한 푼의 돈도 받을 수 없도록 보장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분쟁 중단, 무기, 제재, 인도적·정치적 지원과 관련한 24시간 체제를 갖추기 위해 국가 연합체 'U24'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 중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모습,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는 모습, 아이와 여성이 울부짖고 희생자들을 땅에 던지듯 매장하는 모습 등 참혹한 광경이 담긴 1분 30초가량의 동영상을 틀었다.
영상 말미에는 "우크라이나의 하늘을 폐쇄하라"며 비행금지 구역 설정이라는 요구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미 역사상 위대한 대통령 4명의 두상을 조각한 사우스다코타주의 러시모어산을 언급하고 이는 민주주의와 독립, 자유, 배려를 상징한다고 호소했다.
또 의원들을 향해 우크라이나를 생각할 때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일본의 공격을 받은 하와이 진주만 공습, 그리고 2001년 9·11 테러를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행동과 지원을 호소하는 마지막 부분은 통역 없이 직접 영어로 연설했다.
미 의원들은 연설이 끝나자 기립 박수를 보내며 응원했다. 연설 직전에는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유도로 '슬라바 우크라니'(Slava Ukraini·우크라이나에 영광을)라고 외쳤다.
의회 직원들은 입장 전 미국과 우크라이나 깃발이 새겨진 핀을 의원들에게 배포했다.
미국을 방문한 외국 정상이 의회에서 연설하는 경우는 간혹 있지만 화상 연결을 통한 연설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이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1일째다.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남아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달 초 벨기에 유럽의회에서 열린 특별 회의에서 화상 연설을 했다. 또 영국과 캐나다 의회에서도 결사항전의 의지와 지원을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일본 국회 화상 연설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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