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제재 취소소송 1심 판결문보니…DLF 안전성 과장

입력 2022-03-17 07:17   수정 2022-03-17 09:50

하나은행 제재 취소소송 1심 판결문보니…DLF 안전성 과장
"도박과 다름없고 비싼 상품, 원금보장성 착오 일으켜"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하나은행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징계처분 취소 소송에서 은행의 심각한 불완전판매 행태와 부실한 내부통제에 대한 재판부의 준엄한 질책이 쏟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하나은행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 등의 징계 처분 취소 청구를 전부 기각하면서 "이 사건은 법령 위반의 정도가 중대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크게 물의를 일으킨 사건으로써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고 그 책임의 무게가 막중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하나은행의 불완전 판매 행태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예방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못한 책임이 당시 은행장인 함 부회장에게 있다고 결론 내렸다.

◇ "도박과 다름없고 비싼 상품, 원금보장성 착오 일으켜"
하나은행이 판매한 해외금리 연계 DLF는 해외(영국, 미국) 이자율스와프(CMS) 금리의 변동 폭에 따라 손익이 결정되는 DLF 상품으로 위험도가 '최고위험등급(1등급)'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 상품은 1년간 5천500만원을 얻기 위해 최대 22억원을 잃을 수도 있으면서, 상품 가격이 약 1천600만 원에 이르러 사회 통념상 '비싸고 위험한 상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하나은행 DLF 투자자들이 이를 정확하게 인지하고도 투자한 것이라면 도박과 다름없는 파생상품의 특성상 그 손실의 결과나 지불한 대가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투자자에게 '자기책임의 원칙'이 우선 적용된다"면서도 "이 상품의 '비싸고 위험한' 속성을 알고도 구매한 투자자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이 상품을 출시하면서 자산운용사들이 제시한 손실구조를 검토·검증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자산운용사가 '사내용 한정'으로 제공한 자료를 준법감시인의 승인 없어 고객용 설명서로 활용하는 위법을 저질렀다.
이 상품의 상품위원회 부의 안건에는 '예금형 선호 고객의 수요 충족', '정기예금과 같은 안전자산 선호고객의 수요 충족' 등과 같이 안전성을 과장한 표현이 기재됐다.

판매 교육자료에도 손실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사례만 제시했으며, 원금보장이 거의 가능한 상품으로 착오를 일으키는 설명을 유도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일부 프라이빗뱅커(PB)는 '원금손실 가능성이 작고 수익률이 예금보다 훨씬 높은 확정금리형 펀드'라고 소개하며, 정기예금 또는 적금 등을 선호하며 원금손실 위험을 감수하기를 원치 않는 안정 추구형 고객에게 DLF를 판매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 "판매량의 61%가 규정위반"…'공격투자형'으로 임의변경도
판결문에 수록된 금감원의 검사 결과에 따르면 DLF 불완전판매는 일부 영업점뿐만 아니라 하나은행에 만연했다.
2018년 7월 17일부터 2019년 5월 23일까지 하나은행에서 팔린 CMS 금리 DLF 계좌 총 1천948건 가운데 61.4%에 해당하는 1천196건에서 법령이나 은행 내규 위반이 발견됐다. 가입금액 기준으로는 3천985억원 중 62.7%에 해당한다.
투자자 성향을 임의로 변경하는 심각한 행위도 283건이 적발됐다.
CMS 금리 DLF는 최고위험등급 상품으로 '공격 투자형' 투자자에게만 판매할 수 있으나 하나은행은 전산을 통해 안정 추구형을 임의로 공격 투자형으로 상향해 입력하는 등 편법을 동원해 가입시켰다.
하나은행은 일선 영업점의 불완전 판매를 예방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기보다는 펀드 판매 독려에 열을 올렸다.
영업점의 핵심성과지표(KPI) 운영 기준을 보면 소비자보호는 경쟁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낮게 부여하고, PB센터에 대한 '비이자수익 배점'은 높게 부여했다.

◇ "내부통제기준 실효성 없었다면 의무 위반한 것"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광범위한 불완전판매행위에 대해 함 부회장에게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책임을 물어 '문책 경고' 중징계를 내린 금융당국의 처분이 합법적이냐는 것이었다.
하나은행과 함 부회장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에 관해 '실효성' 조건은 법조문이 아니라 하위법령(시행령)에서 규정한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시행령에 연계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의 일부 사항은 운영 의무에 관한 고시에 불과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함 부회장을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으로 중징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앞서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제재 취소 청구 소송 재판부는 "현행 금융사지배구조법령 아래에서는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이 아닌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으로 금융회사나 그 임직원에 대하여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시민사회는 이에 대해 법조문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해석해 '마련 의무만 있고 준수 의무는 없다는 재판부의 논리는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함 부회장의 제재 취소 청구를 기각한 재판부는 "금융회사가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시행령과 지배구조 감독규정에 따라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거나 형식적으로 마련했더라도 사실상 내부통제기능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없는 껍데기만 남게 돼 '실효성'이 없다면, 이는 내부통제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규정된 지배구조법령이 정한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tr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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