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아베 '美핵무기 공유' 주장 현실성 있나

입력 2022-03-19 07:00  

[특파원시선] 아베 '美핵무기 공유' 주장 현실성 있나
실현 가능성 매우 낮아…우익 결집·기시다 견제 의도인 듯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미국 핵무기를 일본에 배치해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를 거론해 그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 핵무기를 자국 내 배치해 공동 운영하는 핵 공유는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터키 등 일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이 채택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달 27일 일본 민영 방송에서, 이달 3일 자신이 수장인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 모임에서 연이어 일본도 나토식 핵 공유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어 자민당 내 아베 전 총리를 추종하는 정치인들이 거들었고, 우익 성향의 제3당인 일본유신회가 정부에 핵 공유 관련 논의를 요구하는 제언을 제출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에 안보 정책을 제언하는 자민당 안전보장조사회는 지난 16일 안보 전문가들을 초청해 핵 공유 정책을 논의했지만, 부정적인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회의에 참석한 안보 전문가들은 나토와 일본은 상황은 다르다는 견해를 밝혔고, 참석 의원들 사이에서도 핵 공유는 "일본에는 걸맞지 않다"는 취지의 견해가 대세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 상황에서 아베 전 총리가 제기한 핵 공유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우선 나토의 경우 냉전 시대부터 배치된 미국의 핵무기를 공동 운영하는 방식이지만, 비핵 3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미국 핵무기를 반입할 수 없다.
미국 핵무기를 배치하려면 일본 정부는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수정해야 하는데,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에서 이 원칙을 수정하는 것은 평화헌법 개정보다 허들이 더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게다가 핵무기를 운용하려면 투발 수단도 필요하다.
미국의 핵무기 3대 투발 수단은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만약 중국을 겨냥해 핵미사일을 일본 오키나와현 등에 배치한다면 ICBM까지는 필요 없고 사거리 5천500㎞ 이하인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이면 족할 것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의 대립 구도를 고려할 때 미군 핵미사일의 오키나와 배치는 미소 냉전 시대 쿠바 사태와 같은 파문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1962년 당시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하자 미국이 해상 봉쇄에 나서 냉전 시대 미소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고, 전 세계는 핵전쟁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핵무기 탑재 전략폭격기의 오키나와 미군 가데나 공군기지 배치도 중국의 강한 반발을 초래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령 괌에 있어도 될 전략폭격기를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감수하면서 오키나와에 배치하는 결정을 미국이 내릴지도 의문이다.
전시(戰時)에 가장 효과적인 핵무기 투발 수단으로 여겨지는 핵잠수함은 더더욱 일본 배치가 무의미하다는 시각이 있다.
핵을 탑재한 미군 핵잠수함은 전 세계 어느 바다에서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 굳이 비핵 3원칙을 깨면서까지 반입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다.
일부 나토 동맹국에 배치된 미군의 전투기 탑재 전술핵(B61 계열)을 일본에 새로 배치하는 방법도 있지만, 역시 중국의 반발과 함께 동북아 '핵 도미노'를 야기할 수 있다.
동북아의 균형을 깨는 '일방적인 현상 변경 행위'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며,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도 약해질 수 있다.
핵 공유 협정을 맺는다고 해도 핵무기 사용의 최종 결정권은 미국이 갖기 때문에 '핵우산'과 기능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핵우산은 동맹국이 핵무기로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핵무기로 보복하는 방식으로 확장 억지력을 제공하는 개념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의 핵우산과 재래식 전력까지 포함한 확장 억지가 기능하고 있다는 이유로 "(핵 공유) 논의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그런 맥락이다.

역대 일본 총리 중 재임 기간이 가장 긴 아베도 미국 핵무기 공유를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총리 재임 기간 비핵 3원칙 준수를 강조해온 아베가 이제 와서 핵 공유를 언급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관측이 많다.
총리 퇴임 이후 자신을 중심으로 우익 세력 결집을 시도해온 아베가 이번에도 핵 공유 공론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한다는 분석이다.
올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파인 기시다 총리를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관측도 있다.
원폭 피폭지인 히로시마를 지역구로 둔 기시다 총리는 '핵 없는 세계'를 표방해왔기 때문에 핵 공유 논의에는 동조할 수 없는 정치인이다.
일본에서 사실상 금기시돼온 핵무기 배치 문제를 꺼내 그보다는 반발이 덜한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등의 안보 강화를 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원거리 타격 수단 등의 보유를 의미하는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도 아베 내각 때 일본 내 논의가 본격화했다.
hoj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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