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 가치 하락 방치, 항공기 부품 지원 거부 등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에서 발신되는 신호는 매우 복잡하고 모호하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함께 반미 진영의 '대표 주자'임에도 이번 사안만큼은 미국과 러시아의 사이에서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고 있어서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경제·외교적으로 사실상 고립된 상황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협력할지 여부는 이 전쟁이 '국제전'으로 확전 관건이 되는 터라 중국의 관점은 초미의 관심사다.
전쟁 발발 직후 중국은 이번 침공을 러시아의 표현대로 '특별 군사작전'으로 불렀으나 11일 '전쟁'으로 바꿔 불렀다.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가 중국에 전쟁 지원을 요청했고 중국은 이를 수락하는 뜻을 표했다는 보도가 나와 미국이 바짝 경계하기도 했다.
15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스페인 외무장관과 통화에서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대러시아 제재에 중국이 영향받는 걸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16일엔 주우크라이나 중국대사가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절대 공격하지 않겠다. 특히 경제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17일에는 이번 전쟁이 나토의 동진 탓이라며 미국에 각을 세웠다.
중국 회사의 주가는 이런 중국 정부의 입장에 따라 극적으로 출렁거렸다.
CNN은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는 4가지 실마리를 들면서 제재받는 러시아와 '조용히 거리를 두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 루블화 하락 방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는 미국 등 서방의 제재로 인해 달러와 유로화 대비 20% 이상 폭락했다.
중국은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자유롭게 결정되도록 하지 않고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해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이도록 고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중국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PBOC)은 지난주 루블화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배로 늘려 루블화의 빠른 하락을 내버려 뒀다고 CNN은 분석했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인 샤오미와 화웨이는 러시아에서 매우 인기가 높고 중국 자동차도 러시아 시장에서 7% 점유율을 차지한다.
하지만, 중국 자동차는 급격한 환율 변동을 이유로 러시아 거래처에 새 차를 공급하지 않았다고 CNN는 전했다.
◇ 위안화 교환 보류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 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러시아에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지원은 러시아가 보유한 900억 달러 가치의 위안화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의 제재로 전체 외환보유고의 약 절반인 3천150억 달러가 동결된 상태에서 위안화를 달러로 바꾸면 어느 정도 숨통을 틀 수 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이번 주 달러와 유로화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안화를 사용하고 싶다는 의향을 중국 측에 밝혔다.
그러나 중국인민은행은 지금까지 이 요청에 묵묵부답이라고 CNN은 전했다.
에레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러시아가 위안화를 달러나 유로화로 바꾸는 것을 허용하면 이는 러시아를 지원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하면 중국인민은행은 서방의 제재를 위반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허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망했다.
◇ 항공 부품 제공 거부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항공사는 글로벌 양대 항공 제조사인 보잉과 에어버스에게 부품을 받을 수 없다.
이에 러시아 항공사는 몇 주내 부품 부족에 직면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부품을 교체하지 않은 채 위험하게 비행기를 띄워야 할 수 있다.
이달 초 러시아 고위 관료는 중국에 항공기 대체 부품 공급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발레리 쿠디노프 연방항공운송국 정비관리국장은 중국에서 부품을 받는데 실패하자 터키나 인도 등에서 대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디노프 국장도 "내가 아는 한, 중국은 거절했다"고 확인했다.
◇ AIIB 인프라 투자 보류
세계은행(WB)은 지난 2일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모든 지원 프로그램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세계은행은 2014년부터 러시아에 신규 대출이나 투자를 승인하지 않았고 벨라루스에는 2020년 중순부터 신규 대출이 없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지난 3일 러시아, 벨라루스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보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베이징에 본부를 둔 AIIB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인프라 시설 투자 지원을 목적으로 중국이 주도해 2016년 창설했다.
중국이 가장 많은 26.5%를, 인도가 7.6%의 지분을 보유했다. 창립 멤버인 러시아도 AIIB 지분 6%를 보유한 핵심 참여국 중 하나다.
AIIB의 결정은 러시아는 도로와 철도망 향상을 위해 승인됐거나 제안된 11억 달러 규모 자금이 보류된다는 뜻이라고 CNN은 전했다.
taejong7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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