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에 '국제 의용군'으로 참여했다가 빠져나온 프랑스인 알랭 베이젤(57) 씨는 자신을 영웅으로도, 생존자로도 여기지 않았다.
영화 제작자인 베이젤 씨는 러시아군이 지난 13일(현지시간) 폭격한 우크라이나 서부 야보리브 기지에서의 끔찍했던 기억을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털어놨다.
베이젤 씨는 옛 소련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주권 국가를 침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파시스트적 행태에 분개해 참전을 결심했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폴란드 크라코프에 도착한 그는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기차로 이동했고, 작은 버스를 타고 야보리브 기지에 폭격 전날 도착했다.
폴란드와 가까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우크라이나군을 훈련하는 장소였던 야보리브 기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외국인 자원봉사자가 집결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는 영국, 스페인, 뉴질랜드, 미국, 폴란드,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의 의용군이 있었다고 베이젤 씨는 기억했다.
기지에 짐을 푼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이 떠진 그는 담배를 피우려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가 오전 5시 30분께 귀가 먹먹해지는 커다란 폭발음을 들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적인 폭발 소리에 잠을 자고 있던 동료들은 잠옷 차림으로,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뛰쳐나왔다.
두 번째 미사일이 떨어졌을 때는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대낮처럼 사방이 훤했다고 한다. 참호에 숨어 들어간 베이젤 씨의 기억에 폭격은 1시간가량 이어졌고 10여 발의 미사일이 떨어졌다.
폭격이 잦아들자 한 50대 영국인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했으리라 본다며 기지를 떠나고 싶으면 지금 떠나야 한다고 말하자 베이젤씨를 포함해 50여 명이 앞으로 나왔다.
돌아가겠다고 손을 든 이들의 4분의 3은 직업군인 출신이라는 점에 놀랐다는 베이젤 씨는 "무기도, 탄약도,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된 부대도 없이 남아있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았다"고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현장에는 남성 400여 명이 있었는데 이중 무기를 소지한 사람은 60∼70명뿐이었다. 베이젤 씨를 비롯해 2주간의 훈련을 앞둔 다른 사람들은 무기를 받지 못했다.
베이젤 씨 등을 태운 버스가 떠나고 10분 뒤 야보리브 기지는 두 번째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이날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당국은 35명이 숨졌다고, 러시아 국방부는 18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폴란드로 넘어온 베이젤씨와 다른 프랑스인 4명은 폴란드 주재 프랑스 대사관의 도움으로 이틀 뒤 파리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도 이근 전 대위를 포함해 한국 국민 9명이 지난 2일 이후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이후 출국하지 않았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지난 18일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이 가운데 상당수는 외국인 군대에 참가하기 위해 입국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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