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비판적인 반전 가수와 배우들의 TV. 라디오 출연과 음악 방송을 금지하고 있다고 영국 BBC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BBC에 따르면 지난달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며칠 뒤 러시아 미디어 그룹(RMG)은 성명을 통해 일부 예술인들의 TV와 라디오 출연과 방송을 금지했다.
RMG는 당시 성명을 통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몇몇 예술인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를 향해 너무 거친 언사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RMG는 무엇보다 러시아의 음악 애호가들을 존중한다면서도 "러시아 음악 애호가들을 향한 일부 가수들의 오만불손한 태도로 인해" 이들과의 계약을 파기하는 것 외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BBC는 러시아에 대한 반정부 목소리를 내는 예술인들이 탄압을 받지만, 크렘린에 충성하는 예술인들은 주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주에는 TV 공연을 위한 화려한 콘서트가 열렸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콘서트 방송의 서두를 장식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 8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 콘서트에서는 수만 명의 청중이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친러시아 슬로건을 외쳤다.
BBC는 청중들 가운데 일부는 억지로 참석해야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RMG의 방송 출연을 금지당한 이들은 몇몇 우크라이나 가수들과 3명의 러시아 배우들이며, 이들의 이름이 적힌 블랙리스트 문건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가수 이반 도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 러시아인들을 향해 "이 참사를 끝내라, 이 학살전에 가담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영상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로부터 며칠 뒤 그는 RMG에 의해 방송 출연이 금지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도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가 발표되기 전에도 러시아와의 어떤 협력도 불가능했다"며 블랙리스트에 오른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역시 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적힌 러시아 래퍼 오크시미론은 러시아에서 하기로 했던 순회공연을 취소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구제 기금 마련을 위해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들'이라는 주제로 해외에서 자선 공연을 했다.
그는 터키 이스탄불 공연에서 3만 달러(약 3천630만 원)를 모았으며 이번 주 영국 런던 공연이 예정돼 있다.
그는 러시아 공연 취소를 공지하면서 "우크라이나에 포탄이 떨어지고, 키이우 주민들은 지하실이나 전철역에 숨고 일부는 죽어가는 상황에서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옛 소련 시절부터 활동한 전설적인 록 그룹 아크바리움의 리드 싱어인 보리스 그레벤쉬코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가리켜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의 절반은 '금지' 상태였다"며 "70년대에도 그랬고 80년대에도 그랬다"고 말했다.
BBC는 문제의 블랙리스트를 누가 만들었고 어디서 연유했는지는 불분명해 그 문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면서, 러시아 음악계 인사들은 이 문건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매니저인 엘레나 사벨레바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에는 관계자 이름이나 전화번호, 이메일, 공식 직인이 없다"며 " 그저 음악가와 작가 또는 코미디언들의 이름을 프린트해 만든 가짜 문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래퍼인 노이제 MC의 이름도 문제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사벨레바는 보통 이런 압력은 지역 치안 관련 기관으로부터 나오고, 관계 기관원들이 콘서트홀에 나타나 홀 폐쇄나 벌금을 경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클럽인 '16톤'의 음악감독 파벨 카마킨도 블랙리스트 문건이 조작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블랙리스트 문건을 보지 못했다"면서 "그런 일이 있으면 관계 기관에서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오지만 지금까지 나를 만나러 온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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