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수염'이 밝혀준 비밀…라니냐 때마다 먹이활동 수난

입력 2022-03-22 16:06  

고래 '수염'이 밝혀준 비밀…라니냐 때마다 먹이활동 수난
키틴질에 기록된 생화학적 흔적 동위원소 분석 60년간 먹이 활동 변화 확인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고래의 위턱에 난 뻣뻣한 '수염'(baleen)을 통해 60년 가까운 세월의 행적이 드러났다. 이 수염은 이빨이 없는 고래가 바닷물을 흡입한 뒤 크릴과 같은 작은 먹이를 걸러먹는 이른바 '여과섭식'(濾過攝食)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UNSW)에 따르면 이 대학 해양생태학자 트레이시 로저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고래의 수염에 남은 생화학적 기록을 통해 과거의 먹이 환경과 기후변화의 상관관계를 파악한 결과를 학술지 '해양과학 프런티어스'(Frontiers in Marine Science)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을 형성하는 단백질인 '케라틴'으로 된 고래 수염이 자라면서 이를 이용해 걸러낸 작은 먹이의 생화학적 신호가 남게 되는데, 안정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를 확인했다.
연구팀은 호주 박물관에 보관된 태평양과 인도양의 혹등고래와 남방긴수염고래의 수염 시료를 직접 분석해 밝혀낸 것과 이전에 진행된 연구에서 확보된 정보를 취합한 뒤 환경 자료와 비교해 기후조건의 변화가 먹이 활동에 반영됐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남빙양에서 먹이를 부족하게 만드는 라니냐 현상 때는 호주 동부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혹등고래에게서 먹이활동 기회가 적었던 점이 드러나는 등 기후 조건에 따라 먹이 활동이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혹등고래는 여름에 남극 주변에서 먹이활동을 하다 겨울 번식을 위해 따뜻한 열대 수역으로 이동하는데, 이때는 안정적인 먹이원 없이 체내 영양분이나 어쩌다 얻어걸리는 먹잇감에만 의존해 남극 바다에서 충분히 영양을 섭취해둬야 한다.
고래가 주요 먹이로 삼는 남극 크릴은 얼음이 있는 찬 바다에서 번성하는데 라니냐 현상 뒤에는 얼음이 줄면서 크릴이 풍부하지 않게 된다.
논문 제1저자인 박사학위 후보 애들레이드 데덴은 "호주 동부 연안의 혹등고래가 라니냐 뒤 먹이활동이 부족했던 징후를 보였는데, 이는 여름에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전 연구에서는 라니냐 뒤 호주 해변으로 밀려와 갇히는 고래가 늘어나는 것으로 연구돼 있는데, 이는 먹이 활동이 부족했던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됐다.
로저스 교수는 "라니냐가 더 세지고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는 불행하게도 고래가 충분히 먹이활동을 못 하는 것이 계속 많아지고 해안으로 밀려와 갇히는 고래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고 했다.
연구팀은 과거의 흐름에서 패턴을 파악하고 이를 모델로 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서 이번 연구를 통해 확보된 정보는 더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은 고래의 앞날을 수년 앞서 내다보고 준비하고, 필요하다면 고래 보호 전략을 수정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eomn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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