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가격통제 조치…밥상물가 치솟자 거리 시위도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세계 개발도상국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케냐 일부 지역에서는 빵 가격이 최근 40% 뛰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정부가 식용유 가격 통제 조치를 했다. 브라질에서 국유 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는 인플레이션 압력 때문에 휘발유 가격을 19% 올린다고 발표했다.
터키에서는 해바라기유 가격 급등으로 사재기 현상이 일어났다. 이라크에서는 치솟는 식품 가격에 분노한 사람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밀 대부분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하는 나라는 약 50개국으로 이들은 주로 빈곤국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곡물 수출의 약 3분의 1, 해바라기유 수출의 52%를 차지한다.
세계은행에서 경제정책을 관장하는 인더미트 질 부총재는 "충돌이 계속된다면 코로나19 위기보다 영향이 클 것"이라면서 "록다운(봉쇄)은 계획적인 정책 결정으로 뒤집을 수 있지만 이 사태는 쉽게 되돌릴 정책 수단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말까지 선진국 국내총생산(GDP)은 코로나19 이전의 전망치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지만, 개발도상국은 내년 말까지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의 GDP 예상치에 4% 미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개발도상국의 부채 수준이 50년 만에 가장 높은 가운데 물가 상승으로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발도상국은 가뜩이나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이 더딘 실정이다.
골드만삭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곡물 시장에서는 1973년 소련의 흉작 이후 가장 큰 혼란이 벌어졌다고 평가했다. 또한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래 석유 시장에 가장 큰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골드만삭스는 관측했다.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가 올해 남은 기간 배럴당 평균 130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세계 각국 물가가 급등한 지난해 평균 유가(배럴당 71달러)의 2배에 가깝다.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세계 2위 원유 수출국으로 세계 공급의 12%를 차지한다. 러시아는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이며 비료의 최대 생산국이기도 하다. 비료 가격 상승으로 비료 사용이 줄면 수확량이 감소하고 세계 곳곳의 식품 가격이 오르게 된다. 그러면 빈곤국이 특히 큰 타격을 입는다.
세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도 이미 물가 급등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지난해 우간다의 밀 수입액은 3억9천100만달러(약 4천700억원)로 전년보다 62% 늘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산 밀에 많이 의존한다.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는 필요한 밀의 70%를 이들 두 나라에서 들여오고 레바논도 이와 비슷하다. 터키는 우크라이나·러시아산 밀 의존도가 80%를 넘는다.
빵 가격 상승은 2011년 이집트 등 아랍 국가에서 '아랍의 봄'이 일어나는 데 역할을 했는데 당시 시위대는 '빵, 자유, 사회정의'를 구호로 외쳤다.
이집트 정부는 우크라이나 위기로 빵 보조금 비용이 10억달러(약 1조2천100억원) 추가될 것이라면서 새로운 밀 공급선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이집트는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닌 빵에 가격 상한선을 설정했다.
카이로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사라 알리는 "가격 상승이 두렵다"고 말했다.
타흐리 중동정책연구소의 이집트 전문가 티머시 칼다스는 이런 인플레이션 급등은 이집트의 사회 불안정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레바논은 밀 재고가 1개월 치밖에 없다. 아민 살람 레바논 경제장관은 레바논이 좋은 조건에서 밀을 사기 위해 가까운 나라들에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연료와 비료, 일손 부족으로 봄철 옥수수 파종과 초여름 밀 수확에 차질이 생기면 식량 부족 사태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국제적십자사의 알료나 시넨코는 이미 무력 충돌 장기화 등으로 극도로 취약한 소말리아 같은 나라는 식품 가격이 조금만 출렁여도 큰 영향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인도, 태국, 터키, 칠레, 필리핀 등 에너지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들의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인도는 석유의 거의 85%를 수입하며, 태국은 에너지 수입액이 GDP의 6%로 주요 신흥국 가운데 비중이 가장 높다.
S&P는 인도를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유가 쇼크는 GDP를 1%포인트 낮추는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S&P는 올해 유가가 배럴당 115달러에서 유지되면 태국 GDP 성장률은 최대 3.6%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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