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한달] 공급망 차질·고유가·원자잿값 상승에 산업계 직격탄

입력 2022-03-23 11:30  

[우크라 침공 한달] 공급망 차질·고유가·원자잿값 상승에 산업계 직격탄
사태 장기화속 모든 산업에 전방위 영향…수출-생산 막히고 수익성도 악화
수출 중소기업 고충 더 커…무역협회 긴급대책반에 애로사항 535건 접수



(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국내 산업계의 피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필두로 한 서방의 고강도 대(對)러시아 제재 여파로 대금결제가 지연되고 수출입 차질을 비롯한 물류난이 심화되면서 국내 수출 기업과 현지 진출 기업이 모두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원가 부담까지 커져 산업계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 전자·車 등 주력업종 수출 막히고 생산 차질
23일 업계에 따르면 전자, 자동차 등 주력 업종은 러시아로의 제품 수출이 막히고 현지 공장 가동에 차질을 빚는 등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이달 초 글로벌 물류 차질 심화로 러시아에 대한 모든 제품의 선적이 중단됐다고 발표했고, LG전자[066570]도 이달 19일 같은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독일 하팍로이드와 덴마크 머스크, 스위스 MSC 등 글로벌 선사들이 대러 제재 동참과 물동량 감소 등을 이유로 러시아행 운항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는 해외 생산기지에서 만든 스마트폰 제품을 러시아 안으로 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현지 사업도 타격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판매법인을 두고 현지 사업을 벌여왔는데 이번 사태로 사실상 사업이 중단됐다.
러시아에서는 삼성전자가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 생산공장을, LG전자가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TV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공장은 아직 가동하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핵심 부품 수급 문제로 공장 가동이 중단될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005380]는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부품난에 더해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자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이달 1일부터 무기한 중단한 상태다. 현대차·기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서 매년 평균 23만대를 생산해 왔다.
이에 따라 현지에서 현대차그룹에 부품을 납품하는 현대모비스[012330]와 현대위아[011210] 등 계열사를 포함해 세종공업[033530], NVH코리아, 경신, 대원산업[005710], 동아화성[041930] 유라코퍼레이션 등 15곳가량의 협력사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러시아 내수 위축에 따른 매출 감소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대차·기아의 러시아 내수 시장 점유율은 약 23%로 현지 업체인 아브토바즈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
완성차 업체와 함께 러시아 수출이 주력인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피해도 막심하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대러 수출 중 자동차 관련 비중은 40.6%(승용차 25.5%·자동차 부품 15.1%)에 달한다.
러시아 에너지업체들과 장기 건조계약을 맺은 조선업체들도 비상이다.
조선업체들은 주로 헤비테일(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형태의 계약) 방식으로 장기 건조계약을 맺기 때문에 대러시아 금융제재가 무한정 장기화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나머지 대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국내 조선업체와 러시아와의 거래금액은 7조원이 넘는다.


◇ 루블화 환차손·원자재 가격 급등에 수익성 악화
이런 가운데 루블화 가치 절하에 따른 환차손 등 실질적인 수익성 악화와 유가 및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채산성 저하는 산업 전반에 연쇄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루블화 환율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달러당 약 70∼80루블이었으나 서방의 고강도 경제 제재로 지난 7일 기준 155루블까지 올라 화폐 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제 유가는 상승세가 다소 꺾였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다시 급반등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7.42달러(7.1%) 오른 배럴당 112.1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8일 이후 최고치다.
주요 원자재 가운데 니켈 가격은 지난해 12월 평균 t(톤)당 2만70달러에서 이달 평균 3만8천425달러로 올랐다. 같은 기간 리튬(탄산리튬) 가격도 ㎏당 217.41위안에서 468.13위안으로 2배 이상 치솟았다.
반도체 업계의 경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주로 수입해온 네온(Ne), 크립톤(Kr) 등 반도체용 희귀가스 가격이 최근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이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를 기초 원료로 하는 석유화학 업계 역시 최근 국제유가를 따라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이 커지고 수익성은 떨어졌다.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산 나프타의 공급 차질 리스크도 커져 대체 공급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황이 원유와 직결된 정유업계는 단기적인 유가 상승으로 재고 이익이 늘어날 수 있으나 고유가 사태의 장기화는 오히려 수요 위축을 낳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제철용 원료탄과 철광석 등 철강제품 생산에 쓰이는 원자재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철강제품 가격도 연쇄적으로 오르고 있다. 이는 철강재가 쓰이는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수요산업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대기업과 달리 자체적인 대응이 어려운 수출 중소기업들의 고충은 더욱 크다.
한국무역협회가 가동하는 우크라이나 사태 긴급대책반에는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20일까지 국내 기업 410곳으로부터 대금결제, 물류·공급망 등 535건의 애로사항이 접수됐다.
일례로 자동차 부품 수출업체인 A사는 최근 러시아 바이어 측과 약 155만달러의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일방적인 계약 중단을 통보받아 대체 거래선 발굴이 시급한 상황이다.
원단 수출업체 B사는 수출 물량이 이미 선적돼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오데사항에 입항할 예정이었으나 운항 중에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해당 선적 건이 중간에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김바우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최근 관련 세미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국내 산업에는 에너지 및 주요 원·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파급이 크게 나타난다"며 "향후 서방세계의 제재 강화와 러시아의 대응조치 동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bry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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