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를 가다] 난민과 함께 넘은 국경…생이별에 울음바다

입력 2022-03-24 10:30  

[우크라를 가다] 난민과 함께 넘은 국경…생이별에 울음바다
남편은 군 입대·아내는 아이 지키러 국경 넘어 피란
난민 100여 명과 함께 출국 심사…2시간 만에 국경 통과
루마니아 기차역으로 가는 난민 버스 안은 적막 감돌아



(체르니우치[우크라이나]=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루마니아로 넘어가는 우크라이나 남쪽 포루브네 국경 검문소 앞에서 아내는 돌아선 남편의 등을 보고서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함께 있던 할머니와,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아이의 눈도 그렁그렁했다.
가족과 함께 국경까지 왔던 남편은 이제 오던 길로 되돌아가 전쟁터로 향해야 한다. 16∼60세 남성을 대상으로 전시 총동원령이 내려져 가족과 함께 출국할 수 없기 때문이다.
21일부터 사흘간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를 마치고 23일 피란민들과 함께 국경을 걸어 넘어 루마니아로 입국하는 내내 미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출장 취재를 마치고 국경을 넘으면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이 표시 날세라 몇 번이나 심각한 헛기침을 해야 했다.
집을 떠난 이들 피란민은 국경을 넘게 되면 이제 생전 처음 발을 디딘 낯선 땅에서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시작해야 한다.
21일 우크라이나로 입국했을 때는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입국심사가 몇 초도 걸리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피란길에 오른 난민과 섞인 터라 오랫동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입국 심사를 받으려면 먼저 철제 통문 밖에서 대기해야 한다. 이 통문은 국경을 넘기 전 가족·친구를 가르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성인 남성은 이 통문 앞에서 돌아섰다.
한 남성은 아내와 두 아이를 통문까지 배웅한 뒤 아내를 포옹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멀어지는 남편을 바라보던 아내 이리냐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리냐 씨에게 왜 남편은 같이 가지 않냐고 묻자 "남편은 군에 입대해야 한다"고 했다.
나라를 지키러 가는 남편과 아이를 지키러 피란길에 오르는 아내가 포옹하는 장면은 어느덧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됐다.
흔해졌다고 해서 생이별의 아픔이 덜어질 리 만무하다.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통문은 약 30분 간격으로 개방되는 듯했다. 50여 명의 난민과 함께 통문을 통과하니 입국 심사대 앞에 비슷한 수의 난민이 줄을 서 있었다.
100여 명 정도 될 법한 난민은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 또는 노인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로 앞에 할머니와 엄마,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딸, 서너 살 정도 된 어린 아들 이렇게 네 가족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는 할아버지·할머니가 이끄는 대가족이 서 있었다. 할머니가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10대 중반의 손자와 함께 나머지 7명의 손자·손녀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기까지는 약 2시간이 걸렸다.
대기 인원도 많았지만, 불과 몇 초 만에 입국 도장을 찍어주던 입국 때와는 달리 일일이 짐 검사를 한 후에야 출국 도장을 찍어줬다.
피란민에 섞여 국경을 빠져나가려는 러시아 공작원을 색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포루브네 검문소를 통과하자 루마니아의 시레트 검문소가 눈에 들어왔다. 저곳까지 통과해야 '여행금지' 국가인 우크라이나 출국이 마무리된다.
시레트 검문소를 지나 루마니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자선·구호단체들의 천막이었다.
천막 쪽으로 다가가자 루마니아 통신사 직원이 무료 유심칩을 나눠줬고 자원봉사자들이 생수와 우크라이나어로 적힌 안내 책자를 나눠줬다.
소방대원들은 소방 버스로 난민을 원하는 목적지까지 무료로 데려다줬다.
난민들과 함께 인근 기차역까지 가기로 하고 소방 버스에 올라탔다. 20여 명이 탑승하자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 안은 적막이 감돌았다. 대부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표정 없이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 아무도 자신이 겪은 고된 여정을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칭얼대는 아이의 울음과 이를 달래는 엄마의 목소리가 이따금 들리는 소리의 전부였다.
타국에서 이제 막 시작된 정처없는 피란살이의 불안과 두려움이 버스 안을 압도적으로 짓누를 뿐이었다.

kind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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