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금·기술지원 차단…우랄산 원유 26% 싸게 내놔도 매수자 적어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서방 세계가 러시아산 원유의 전면 수입 금지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에너지산업은 이미 제재의 고통을 체감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제재는 아직 직접적이라기보다는 간접적이다.
미국과 캐나다만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했고, 유럽연합(EU)은 금지를 고려 중인 상황이다. 현재로선 러시아산 에너지의 전면 수입 금지까지는 아닌 셈이다.
서방은 대신 러시아가 노후화된 유전을 개발·유지·보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과 선진기술은 차단했다.
아울러 서방의 에너지 회사들은 러시아 내 사업을 접고 있고, 트레이더와 은행들은 러시아산 원유의 매매를 꺼리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러시아 원유 생산을 위태롭게 하고 있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러시아 원유 생산량이 15% 급감해 2003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 석유회사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러스에너지'의 미하일 크루티힌 파트너는 "이런 것들이 러시아 에너지 산업을 수년 후퇴시킬 것"이라며 "이는 경쟁력 상실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에너지 산업의 쇠퇴는 이미 곤경에 빠진 러시아 경제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러시아 세입예산의 40%가량이 에너지 업계에서 나온다. 또 내년까지 에너지 업계 종사자 150만명가량이 실직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러시아산 원유가 여전히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지만 사려는 이들은 없다시피 한다.
러시아 우랄산 원유 가격은 북해산 브렌트유의 가격이 배럴당 115달러일 때 배럴당 85달러에 그쳤다. 브렌트유보다 가격이 26%가량 낮다는 것은 그만큼 우랄산 원유 인수자가 충분치 않음을 의미한다고 WSJ은 설명했다.
컨설팅 회사 아페리오 인텔리전스의 게오르기 볼로신 애널리스트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원유 수출에 대한) 직접 제재가 없어도 러시아 내 원유 저장고가 국내산 원유로 가득 차서 원유를 보관할 데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에너지 기업들은 해외 기업의 철수로 원유 탐사와 시추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BP, 셸, 엑손모빌 등 오일 메이저들이 러시아와 관계를 단절하고 있고, 최근엔 할리버튼, 베이커휴스 등 대형 원유 서비스 회사들도 러시아 내 신규 투자나 기술 구축을 중단하기로 했다.
자신들이 기본적인 시추작업을 담당하고 고급 기술이 필요한 작업은 다국적 기업에 의존하는 러시아 에너지 업계로서는 난감하게 됐다.
예컨대 이런 해외 원유 서비스 회사들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가 러시아 에너지 업계 소프트웨어의 60%가량을 차지한다.
러시아 천연가스 개발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러시아는 북극해 가스전을 개발해 액화천연가스(LNG) 시장의 점유율을 확대하려고 하지만, 그런 인프라를 구축할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러시아 정유업계도 원유 정제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WSJ은 러시아가 에너지 투자와 관련해 중국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으나, 중국도 서방 제재를 의식해 나서기를 꺼릴 수 있다고 전했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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