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희생 확산 일로·막가파식 지도자·중국만 지지 '닮은 꼴' 동병상련
'신냉전' 미·유럽 적극 관여에 서운함·우려…"우크라와 함께 도와달라" 호소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장면 #1. 2021년 2월1일 미얀마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한 해 전 11월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문민정부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
흘라잉 사령관은 반세기 넘는 군사정권의 어둠을 뚫고 피어나던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았다.
장면 #2. 2022년 2월24일 우크라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경을 접한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쏘고 지상군을 진입시켰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추진이 러시아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를 들었고,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다.
미얀마 쿠데타는 군부의 내부 반란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한 나라가 독립 국가를 침략한 상황이라 근본적 차이가 있다.
그러나 약 1년의 시차를 둔 두 비극적 사건에는 유사한 측면도 많다.
◇ 사망 1천700명·최소 1천35명…민간시설 마구잡이 폭격
태국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약 14개월간 군부의 유혈 탄압에 숨진 미얀마인은 1천700명에 육박한다.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가 아동과 여성 등을 가리지 않고 자국민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았고, 전투기나 무장 헬기를 이용해 폭탄을 퍼부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불을 질렀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침공 한 달인 지난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는 1천35명이라고 밝혔다. 어린이 90명도 포함됐다.
남부 마리우폴 상황이 추가되면 피해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러시아군이 수 주 동안 공격을 집중하면서 여기서만 2천500명 이상이 숨졌을 거라는 보도가 나온다.
피란을 나선 일가족이 러시아군 포탄에 맞아 숨을 거둔 모습, 산부인과 병원을 러시아군이 폭격해 임신부가 피투성이가 된 모습에 세계는 분노했다.
어린이들도 피신한 극장을 폭격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민간 시설을 가리지 않고 폭격하는 것도 판박이다.
러시아군이 구형 재래식 '멍텅구리 폭탄'(dumb bomb)을 사용한다고 미 CNN 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추적하는 유도 기능이 없어 오폭 위험이 크다고 한다. 물론 민간인들이 대피한 마리우폴의 극장을 정밀 유도폭탄으로 폭격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얀마군이 사용했다는 대형 폭탄도 공개됐다.
이달 초 카야주 한 마을의 교회 인근에 떨어진 두 개의 폭탄 중 불발탄이다.
폭탄 무게만 약 250㎏에 길이는 성인 키만 하다.
세르비아에서 들여온 열압력탄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내출혈은 물론 코나 귀에서 피가 나오게 할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다고 한다.
◇ '힘이 정의다' 푸틴과 흘라잉
흘라잉 사령관과 푸틴 대통령 모두 '힘이 정의'라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라는 평을 받는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전직 외국 당국자 등을 인용, 흘라잉 사령관이 남에게 군림하고 야욕이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도전을 받을 때 힘을 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에 대해 영국 BBC 방송은 1990년대 냉전 종식 후 러시아가 당한 굴욕을 극복해야 한다는 '욕망'과, 서방이 러시아를 몰락시키고 자신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거라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고 정보 관계자들의 분석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이 스스로 만든 거품 속에 고립돼 있으며 그의 생각에 반하는 정보는 이 거품을 통과할 수 없다는 분석도 싫었다.
◇ 국제사회 '왕따'…중국만이 유일한 친구
미얀마와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왕따'가 됐다.
두 나라를 지지하는 국가는 '극소수'다. 이 중 중국이 있다.
중국이 미얀마 군부 편을 드는 건 에너지 안보 때문이다.
중국은 2014년 미얀마 서부 해안 짜욱퓨에서 중국 윈난성 쿤밍시를 잇는 약 800㎞ 구간에 송유관과 가스관을 건설했다.
연간 2천200만t의 원유와 120억㎥의 천연가스가 수송된다.
러시아 지지 배경에는 첨예한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의 관계가 있다.
러시아를 우군으로 만드는 것이 패권 경쟁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양국을 편드는 중국측 발언은 1년여 시간차에도 너무나 유사하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작년 2월 쿠데타 이후 "유엔 안보리는 미얀마 갈등을 격화하고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쥔(張軍)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지난달 25일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러시아에 대한 계속된 제재 압박은 더 혼란스러운 상황과 봉합하기 어려운 갈등을 초래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 '다윗 대 골리앗'…눈물겨운 저항
미얀마 군부와 러시아는 쿠데타와 침공 사태가 단기간에 끝날 걸로 예상했을 것이다.
국민이나 소수민족 무장 조직과 비교해, 우크라이나군과 비교해 각각 압도적인 무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을 빗나갔다.
'골리앗'을 상대로 '다윗'인 양국 국민이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나무와 쇠 파이프로 사제 총을 만드는 미얀마 젊은이의 모습과 조국을 지키겠다며 소총을 들고 사격 연습을 하는 우크라이나 할머니의 모습이 겹친다.
◇ '동병상련' 느끼지만 잊힐까 두려운 미얀마
이런 유사점 때문에 미얀마 국민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는 듯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서운함'(?)도 감지된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 관심과 지원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생각 때문인 걸로 보인다.
양곤 직장인 메이 툰(가명ㆍ29) 씨는 연합뉴스 통신원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가 대 국가 문제여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음을 알고 있다"면서도 "미얀마 사태도 국민 학살인데 국제적 관심에서 너무 멀어지고 있어 더 많은 국민이 희생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느웨인 윤(가명ㆍ22)씨도 "사람이 많이 죽어가는 건 똑같은데 우크라이나는 국제적인 관심과 지원을 많이 받고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고 공감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국제사회에 미치는 여파가 미얀마 쿠데타와 비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 등 서방과 중국·러시아 간 갈등이 신냉전으로 불릴 만큼 심화하면서 국제 질서가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주권국가를 무력으로 침범하는 실례를 목도하며 유럽과 아시아 각국이 군비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간접적이긴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주요 서방 국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전' 양상도 띠고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배제 등 실질적인 경제제재를 가하는가 하면, 각국이 우크라이나군에 첨단 무기도 제공했다.
둘 다 미얀마인들이 국제사회에 간절히 바랐던 부분이다.
냉엄한 국제사회 현실을 볼 때, 당분간 전 세계의 시선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집중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 때문일까. 미얀마 안팎에서는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도 잊지 말아달라'는 호소가 나온다.
반군부 진영 임시정부 격인 국민통합정부(NUG)의 사사 대변인은 최근 SNS에 이렇게 썼다.
"미얀마를, 우크라이나를 구해주세요. 미얀마와 우크라이나의 용맹한 국민은 여러분의 도움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일본에서 모금을 시작한 한 미얀마 여성은 교도 통신에 "세계가 우크라이나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십분 이해한다"면서도 "다만 '미얀마의 비극을 절대 잊지 말아달라. 밝은 미래를 위한 희망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라고 언급했다.
쿠데타 두 달여 뒤인 지난해 4월 중순 연합뉴스는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거리 시위를 이끌었던 시민운동가 타이자 산을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타이자 산은 '어디서 발생하든 불의는 세상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는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의 말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협박하는 것은 전 세계 민주주의를 협박하는 것"이라며 국제사회 지원을 요청했다.
쿠데타 사태를 방치해 군부가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리도록 한다면 전 세계에 제2, 제3의 미얀마 사태가 계속될 거라는 이야기다.
우크라 침공 사태 한가운데서 국제사회는 미얀마인들의 호소에 귀 기울일 일 수 있을까.
sou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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