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가슴 저미게 하는 사진·동영상, 정보전서 강력한 탄약 돼"
언론 접근 차단되면서 일반인이 올리는 사연, 호소력 커져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러시아로부터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면서 소셜미디어가 저항을 결집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고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리비프)에선 최근 평화 활동가들이 빈 유모차 109대를 가져와 광장에 세워놨다. 러시아 침공으로 사망한 어린이를 유모차로 상징해 무언의 시위를 한 것이다. 이 장면을 찍은 사진은 몇 시간 뒤 수백만명에게 전파됐다.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한 지하실로 대피한 한 7살 소녀가 영화 '겨울왕국'의 주제곡 '렛잇고'를 개사해 부른 짧은 동영상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애잔한 감동을 남겼다.
이 소녀는 이 유명세 덕에 최근 폴란드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 무대에 올라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또 폭격으로 검게 그을린 건물들을 배경으로 하르키우(하리코프)의 한 거리에서 음울한 바흐의 모음곡을 연주한 첼리스트의 동영상도 수천명이 봤다.
NYT는 "러시아 침공 후 가슴 저미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이들 편린은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보전에서 강력한 탄약이 됐다"고 진단했다.
특히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런 메시지 전파가 실제 전선에서 거둔 우크라이나 군대의 실적을 보완하는 핵심적 전장이 됐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에머슨 브루킹 수석 연구원은 "우리는 소셜미디어 피드를 통해 이 전쟁을 매우 원초적 감정으로 경험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인 국가로 탈바꿈한 것은 냉혹한 일이었고, 그래서 특히 서방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소셜미디어는 사회운동가들이 조직을 꾸리고 뉴스를 공유하거나, 투사를 모집하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공간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선 그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퍼져나가면서 우크라이나를 윤리적이고 충직한 생존자의 이미지로 투사하도록 돕고 있다고 NYT는 진단했다.
러시아가 과거와 같은 수준의 가짜 뉴스 확산에 나서지 못한 것도 이런 것들이 한몫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최대 아동병원인 오크마티트 소아병원의 공보 담당자 아나스타시야 마게라모바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아예 병원으로 거처를 옮겨, 병실에서 자고 24시간 일하며 부상당해 병원으로 몰려오는 민간인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텔레그램 등에 올린다.
마게라모바는 자신도 군인들 옆에서 나란히 진실을 위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듯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 전쟁의 결과를 보여주고 싶다. 바로 다리와 팔, 머리에 파편이 박힌 불쌍한 어린이들"이라며 "이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마게라모바는 최근엔 폭격을 받게 되자 자기 몸으로 갓난아기를 덮쳐 막은 젊은 엄마 올가의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들 가족의 수난은 금세 전 세계에 울림을 가져왔다.
우크라이나 내부와 인근 국가에 본부를 둔 시민사회단체와 인도주의 기관도 정보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병합한 2014년 조직된 비정부 미디어 허브 '프로모트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전쟁 발발 뒤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며 온라인상에서 존재감이 커졌다.
유럽 국가나 점령된 우크라이나 도시에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온라인에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사람들의 사연을 전하는 글과 사진,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프로모트 우크라이나의 한 관계자는 일부 사진들이 이미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라는 여론 형성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 사진들은 유럽인과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열고 있다. 이렇게 하면 보통 사람들도 정치인들이 나서서 뭔가 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텔레그램 계정들에 올라온 정보를 취합한 뒤 이를 영어로 번역해 트위터에 게시하는 사람들도 다수가 활동 중이다. 해외 언론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셈이다.
브루킹 연구원은 "트위터에 가공되지 않은 전쟁 동영상을 올리는 경로가 있다"고 말했다.
서방 언론들이 모두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오고 전쟁으로 접근이 차단되는 지역이 늘면서 일반인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개인의 사연은 더 호소력을 갖게 됐다고 NYT는 전했다.
하버드대 쇼렌스틴센터의 조안 도너번은 "사람들이 전쟁의 직접적 체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 그리고 우려하는 청중들이 눈길을 돌리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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