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따른 추가 제재 논의를 위해 26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공개 회의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한국을 포함한 이사국 대부분이 북한의 ICBM 발사가 안보리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강력히 규탄했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은 북한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해선 안 된다"며 성명 채택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안보리가 내리는 결정은 실질적 강제력을 지닌 '결의', 공식 기록으로 남는 '의장 성명', 가장 약한 '언론 성명' 세 가지가 있는데 언론 성명 채택조차 무산된 것이다. 결국 북한의 도발에 안보리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침묵하는 꼴이 돼 버렸다. 미국은 안보리 결의 2397호의 이른바 '트리거'(trigger·방아쇠) 조항에 따라 현재 연간 각각 400만 배럴, 50만 배럴로 설정된 대북 원유 및 정제유 공급량 상한선을 추가로 줄이는 제재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중·러의 반대가 불 보듯 뻔해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2017년까지만 해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소극적이긴 했지만, 우려를 표명하면서 미국 주도의 제재 결의나, 규탄 성명에 동참해 왔다. 그런데 5년 만에 열린 이번 대북 관련 긴급 이사회에서는 오히려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미·중 간 글로벌 헤게모니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전 세계가 신냉전의 파고에 휩쓸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국제정세가 실로 엄혹하게 전개되고 있다. 북한이 2018년 ICBM 발사 시험을 중단하겠다고 한 '레드라인'을 넘어서면서 도발에 나선 것도 이런 정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신냉전 '3자 동맹'을 강화하는 모양새이다.
이런 지정학적 구도 속에서 유엔은 종이호랑이보다 못한 신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안보리는 지난달 25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규탄 성명을 채택하려 했지만, 침공 당사국인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 있고, 러시아의 후견국이 된 중국의 반대로 불발됐다. 안보리는 신냉전 이후 지난 수년간 시리아 내전, 미얀마 쿠데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등 중요 사안에 대한 공동 의견 도출에 번번이 실패했다. 미국 하원이 러시아의 안보리 퇴출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유엔 헌장에는 상임이사국 자격 상실 여부는 모든 상임이사국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돼 있다. 러시아가 반대하면 러시아 퇴출이 불가능한 구조이다. 세계 평화와 안보를 위해 창설된 안보리지만 신냉전 구도 하에서는 유명무실하다. 지구촌의 화약고로 불리는 한반도는 신냉전의 직접적 영향권하에 있다. 갈등과 분열로 국력을 소모할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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