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연행' 표현은 부적절" 각의 결정에 교과서 수정요구 이어져
제약 속 가해행위 알리려 노력한 흔적도 엿보여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29일 일본 정부 검정을 통과한 일본 고교 역사 교과서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을 부실하게 기술한 사례가 꽤 있었다.
'강제연행' 표현을 막은 일본 정부 방침에 따라 검정 과정에서 수정하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일제의 가해 행위에 물타기 하는 방식으로 서술이 변경되기도 했다.
이런 제약 속에서도 일부 교과서에는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가르치기 위해 애쓴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 강제동원 이해하기 어렵게 서술…'법령에 따른 동원' 부각
연합뉴스가 29일 종료한 검정 결과를 분석해보니 모집, 관(官) 알선, 징용 등 여러 형태로 실시된 조선인 동원이 강제적이었고 사실상 강제연행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서술한 교과서들이 합격 판정을 받았다.
짓쿄출판의 일본사탐구 교과서 중 1종은 "일본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약 80만의 조선인을 공장이나 탄광 등에 동원해서 일을 시켰다", "(일본 각지에) 조선·대만·중국 등에서 징용된 사람들이 군수공장의 노동력 등으로 모였다"고 기술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강압이나 기만에 의해 동원됐고 굶주림, 폭행, 감시가 일상적이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는데 짓쿄출판의 교과서의 내용을 보고 이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노무 동원에 관한 일제강점기 법령을 부각해 피해자들이 강제로, 혹은 어쩔 수 없이 동원됐다는 점을 인식하기 어렵게 한 사례도 있었다.
도쿄서적의 일본사탐구 교재는 "국민총동원법에 토대를 둔 징용도 시작됐다", "조선인이나 대만 사람들도 국민징용령에 의해 동원돼"라고 기술했다.
이는 조선인 동원이 정당하고 합법적이었다는 인상을 심을 수 있다.
균형 잡힌 서술 방식으로 보기에는 의문이 있다.
일제는 전쟁 중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징용령 시행 전에도 많은 조선인을 탄광이나 공장 등에 투입했다는 것이 연구·조사로 확인된 바 있다.
일제강점기 연구 전문가인 정혜경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 정부가 피해자로 판정한 이들 가운데는 당시 일본 법규가 정한 최저 연령(12세, 여자 정신근로령 기준)보다 어린 10살 소녀가 동원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강제연행' 부적절 압박에…"정부 견해와 다르다" 수정 요구
검정에서 지적을 받고 강제성을 알기 어렵게 수정한 사례도 있다.
짓쿄출판의 일본사탐구는 "일본으로의 조선인 연행은 1939년 모집 형식으로 시작해 1942년부터 관(官) 알선에 의한 강제 연행이 개시됐다. 1944년에는 국민징용령이 개정 공포돼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강제 연행 실시가 확대됐고"라고 썼다가 '정부의 통일된 견해에 토대를 둔 기술이 아니다'는 취지의 지적을 받았다.
이에 출판사는 "일본으로의 조선인 동원은 1939년 모집 형식으로 시작해 1942년부터 관 알선에 의해 이뤄졌다. 1944년에는 국민징용령이 개정 공포돼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동원 대상이 확대됐고"라고 고쳤다.
최초에는 노무 동원이 강제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썼는데 정부 견해와 다르다는 지적을 받고서 '강제 연행'을 '동원'으로 바꾼 것이다.
데이코쿠서원의 세계사탐구는 "노동자가 강제적으로 연행됐다"고 썼다가 검정에서 문제가 돼 "노동자가 징용·동원됐다"로 고쳤다.
야마카출판의 일본사탐구는 "조선인이나 점령하 중국인도 일본에 연행돼 탄광이나 공장 등에서 노동을 강제당했다"고 썼다가 정부 견해를 토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조선인이 징용당하고, 점령하 중국인도 일본 본토에 연행돼 광산이나 공장에서 일 시킴을 당했다"고 내용을 변경했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 동원에 대해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며 조선인 동원이 '강제노동'을 시킨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작년 4월 각의 결정한 것이 교과서 서술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역사 교과서와 정치·경제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에 토대를 둔 기술이 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확인된 것만 14차례에 달했다.
대부분이 '강제연행', 혹은 '연행' 등의 표현을 지적하는 것이었고 '일본군 위안부'를 '위안부'로 수정하도록 유도한 것도 일부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무 동원을 "'강제노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답변서를 작년 4월 각의 결정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국민징용령에 따른 조선인 노동력 투입에 대해 '강제연행'이나 '연행'이 아닌 '징용'으로 표현하는 게 적당하다는 견해를 함께 표명했다.
일본 정부의 결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를 야마카와출판의 또 다른 일본사탐구 교과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교과서는 "노무 동원으로 수십만 명의 조선인을 일본에 보냄과 더불어 점령지역의 중국인을 일본 본토에 강제 연행해 광산이나 토목 공사 현장 등에서 일 시켰다"고 썼다.
작년에 검정을 통과한 야마카와의 역사총합에서 "조선인이나 대만인, 점령지 중국인이 일본 본토에 강제적으로 동원돼 공장이나 광산에서 일 시킴을 당했다"라고 쓴 것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당시에는 조선인, 대만인, 중국인의 동원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서술했는데 이번에는 조선인만 따로 구분해 '보냈다'고 쓴 것이다.
◇ '금지어' 피해 '가해 역사' 전달하려 애쓴 흔적도
정부의 통일된 견해에 따라 쓰라는 지침을 따르되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쓴 흔적도 엿보였다.
짓쿄출판이 일본사탐구에서 "강제연행·강제노동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해"라고 쓴 부분을 예로 들 수 있다.
검정 과정에서 정부의 통일된 견해에 토대를 둔 기술이 아니라는 지적이 어김없이 나왔다.
짓쿄출판은 이 부분을 "강제적으로 동원돼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해"라고 고쳐 썼다.
'강제연행', '강제노동'이 사실상의 금지어라서 고수하지는 못했으나 일제의 수탈을 알리는 방안을 궁리한 결과로 보인다.
다이이치가쿠슈샤 일본사탐구는 "일중(중일) 전쟁의 장기화와 더불어 일본 국내 노동력이 부족하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다수의 조선인을 강제연행했다"고 썼다가 역시 정부의 통일된 견해를 토대로 하지 않은 기술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출판사는 해당 설명을 그대로 두고 "2021년 4월 일본 정부는 전시(戰時) 중 한반도에서 노동자가 온 경위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강제연행'이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각의 결정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연행에 해당하는 사례도 많았다는 연구도 있다"고 주석을 붙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짓쿄출판의 세계사탐구는 "전쟁수행을 위해 식민지·점령지로부터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했다"고 일제의 행위를 규정해 눈길을 끌었다.
이 교과서는 "많은 조선인이나 일본 점령 하의 중국인이 일본 광산이나 토목사업 등의 노동자로서 초집(招集·사람을 불러모음)돼 저임금과 민족차별 아래 심한 노동에 종사 당하는 외에 일본이나 중국·동남아시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강제동원', '강제연행' 등으로 규정하지 않고 초집이라고 표현한 것이 미흡하지만, 동원된 이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데 나름대로 지면을 할애한 편이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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