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정전 위기에도 태양광 무용지물…탈원전 폐기 계기될까

입력 2022-03-30 06:30  

일본 대정전 위기에도 태양광 무용지물…탈원전 폐기 계기될까
11년 만에 후쿠시마 앞바다 7.4 강진으로 수도권 전력부족 사태
눈·비 등 악천후로 태양광 제구실 못 해…'원전 재가동' 여론 높아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이달 22일 저녁, 화려한 야경으로 유명한 일본의 수도 도쿄(東京) 도심이 눈에 띄게 어둑어둑해졌다.

도쿄의 관광명소인 634m 높이의 스카이트리는 조명이 꺼져 밤하늘 속 시커먼 조형물로 변했고, 도심 곳곳 대형 오피스 빌딩과 관공서들도 희미한 어둠 속에 잠겼다.
지난 16일 밤 일본 후쿠시마(福島)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4 강진의 여파로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는 일부 화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추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진 발생 6일 뒤인 22일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도호쿠(東北) 지역에 전력 수급 위기 경보를 발령하면서 가정과 기업에 절전을 당부했다.
평소보다 전력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도쿄의 기온이 영상 2도까지 떨어지며 위기 경보인 '전력 수급 핍박 경보'를 발령한 것이다.
전력 수급 핍박 경보는 전력 공급 예비율이 3%를 밑돌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원자력발전소 가동이 중단되며 전력 부족 문제가 대두된 2012년 정비한 제도이지만, 실제 발령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쿄전력은 이날 오후 3시께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오늘 오후 8시 이후 양수식 수력 발전의 운전이 정지해 수도권 200만∼300만채가 정전될 수 있다"며 절전에 협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경제산업상도 같은 시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절전량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오후 8시까지 한층 더 강력한 절전을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 강진에다 추운 날씨로 빚어진 전력 부족 사태
16일 밤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현내 화력발전소 2곳의 가동이 중단됐고, 이 여파로 16∼17일 사이 도쿄가 있는 간토(關東)와 도호쿠 지방에서는 약 200만 건의 대규모 정전이 일어났다.

화력발전소가 채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22일에는 도쿄 등 동일본 지역에 눈·비가 내리며 기온이 영상 2도까지 떨어져 난방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NHK는 "비가 내려 태양광 발전에 의한 전력을 기대할 수 없고, 겨울이 돌아온 듯한 추위 때문에 난방 수요가 크게 늘어나 전력 수급 상황이 악화됐다"고 보도했다.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에 따르면 수도권과 도호쿠 지역에 전력 수급 위기 경보가 발령된 22일 동일본 각지에서는 눈·비가 내리거나 날씨가 흐려 태양광 발전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도쿄전력 관내에는 1천만㎾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 시설이 있지만 이날은 날씨 탓에 제 기능을 못했다고 닛케이비즈니스는 전했다.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이 오락가락하는 신재생에너지의 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일본은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급격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데다 전 세계적인 탄소 저감 추세에 맞춰 석탄·석유 화력발전소까지 대거 가동을 중단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등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으로서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원전 33기 중 10기만 가동
일본 내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점검 등을 위해 대거 사용이 중단됐던 원전의 재가동이 지연된 것도 이번 전력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국에 있는 원전 33기 중 10기만 상업가동을 재개했다.
나머지 원전은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안전점검을 거쳐 재가동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있다.
도쿄전력 산하 가시와자키카리와(柏崎刈羽) 원전 6호기는 심사초안 승인 후 4년 이상 가동이 보류된 상태다.
7호기 공사계획은 2020년 10월 승인이 됐지만, 안전대책 공사가 완료되는 시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고미야마 료이치(小宮山?一) 도쿄대 대학원 준교수는 "재가동을 위한 심사를 좀 더 신속히 진행하고 안전성이 확인된 원전은 순차적으로 재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이달 25∼27일 18세 이상 성인 976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안전이 확인된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닛케이비즈니스는 그동안 외면해왔던 원전 재가동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며 정부는 '지진 대국' 일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정전 위험을 제거하고 바람직한 전원(電源) 구성을 신속하게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passi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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