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친러 반군에 대항하려 결성…초기에는 극우 민족주의·나치즘 색채
서방 분석가들 "지금은 이데올로기 탈피…강한 이미지로 인기 얻어"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함락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 도시를 기반으로 성장했고 한 달에 걸친 러시아군의 맹렬한 포위공격을 막아내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조우(아조프) 연대의 운명 역시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졌다.
아조우 연대 창설 주역이자 초대 사령관인 안드리 빌레츠키가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 타임스(FT)와 통화에서 전한 바에 따르면 현재 마리우폴에서 항전하는 아조우 연대 병사들은 1천500여 명에 이른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이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붙잡아 재판에 넘겨야 할 대상이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보기에는 침략자에 맞서 가장 용감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구국의 전사들이다.
러시아가 다른 여러 도시에 대해서는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적 통로' 개설에 합의해 줬으면서도 정작 인도적 위기 상황이 가장 심각한 마리우폴에서는 피란민의 탈출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아조우 대원들이 민간인과 섞여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러시아군은 아조우 연대가 마리우폴의 대원들에게 민간인으로 변장해 도시를 빠져나오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주장해 오고 있으며 28일에는 마리우폴에서 아조우 연대 대원들의 도피에 쓰일 헬리콥터를 파괴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나치를 추종하는 아조우 연대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주민들을 상대로 집단학살, 고문 등 범죄를 자행해 왔다고 비난해 왔다. 러시아가 침공의 이유로 내세운 우크라이나의 '비나치화'는 이를 염두에 둔 주장이었다.
아조우 대원들을 모조리 생포해 이들의 '범죄'를 낱낱이 밝히고 단죄하는 것이야말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침공을 정당화할 최상의 선전 수단이 될 수 있다.
AFP에 따르면 아조우 연대는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내전을 일으킨 돈바스의 친러 반군에 맞서기 위해 수백 명의 민병대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아조우 대대'로 불렸으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아조우 연대'라는 속칭을 얻게 됐고 지금은 우크라이나 내무부 산하 국가경비대의 일원으로 편입돼 정규군의 지위를 얻게 됐다. 정식 명칭은 '아조우 특수작전 파견대'다.
아조우 연대는 2014년 분리주의 반군이 점령했던 마리우폴을 탈환해 명성을 얻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군의 침공 이후에는 마리우폴 등 몇몇 주요 도시의 방어에 투입됐다. 아조우 연대는 러시아군의 맹렬한 공격을 견디고 마리우폴을 지켜내는 데 선두 주자 역할을 해 왔고 교전 과정에서 러시아군 장성을 사살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다.
아조우 연대는 늑대 갈고리(Wolfsangel)를 형상화한 부대 상징을 만들어 깃발과 휘장 등에 사용했는데 그 모양이 나치의 갈고리 십자가(Hakenkreuz)와 비슷해 보여 나치 추종자라는 이미지를 강화한 측면이 있다. 아조우 연대 측은 이를 부인하면서 늑대 갈고리 문양은 '민족의 이상(Natinal Idea)'이라는 말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아조우 연대가 초기에 나치즘의 색채를 띠고 있었고 빌레츠키를 비롯한 주도적 인사들이 극우 인종주의, 나치즘 성향의 언동을 일삼았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빌레츠키는 지난 2010년 우크라이나의 임무는 "최후의 십자군전쟁에서 유대인이 주도하는 열등인종들(Untermenschen)과 싸우는 전 세계 백인들을 선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5년 아조우 연대 대변인은 신병 가운데 10~20%가 나치 추종자라고 밝혔다. 이듬해에는 아조우 연대 대원들이 돈바스에서 친러 반군 포로들을 마리우폴로 끌고 가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가했다고 고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대개 과거의 일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아조우 연대에서 극우 이념의 색채가 흐릿해졌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군에 대항해 열렬히 싸우는 현재의 모습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서방 전문가들이 많다.
동유럽연구 스톡홀름센터의 안드레아스 움란드는 AFP에 "출범 당시 이 단체는 분명히 극우 배경을 지녔다.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아조우 대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탈이데올로기"의 길을 걸었고 지금은 일반적인 전투 부대가 됐다면서 "이 부대에 지금도 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것은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강한 전투부대라는 이미지 덕분"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하는 러시아·동유럽 전문가 안톤 셰호프초프도 FT와 인터뷰에서 "아조우 연대는 네오 나치 그룹이 설립한 자원병 부대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지금은 그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아조우 연대가 초기에 표방했던 극우 민족주의 이념이 우크라이나 정치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빌레츠키를 비롯한 아조우 연대 창설 주역들이 설립한 정당은 선거에서 득표율 2%를 넘긴 적이 없다.
'칼리나'라는 가명을 쓰는 마리우폴의 아조우 연대 부사령관은 텔레그램에 "애국심과 나치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타국 땅을 점령하려 한 적이 없지만 21세기의 진짜 나치에는 맞서 싸워야 한다"고 썼다.
cwhy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