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외국인 판사들…흔들리는 홍콩 사법 독립

입력 2022-03-31 13:35  

떠나는 외국인 판사들…흔들리는 홍콩 사법 독립
영국 "홍콩의 압제 정당화 위험…법관 영구 철수"
"추후 외국 판사 임명 어려울 수도"…중국 "내정 간섭" 반발



(홍콩·베이징=연합뉴스) 윤고은 한종구 특파원 = 영국 정부가 홍콩국가보안법에 반발해 홍콩 대법원 격인 종심법원에서 자국 법관들이 영구 철수한다고 발표하면서 홍콩의 사법 독립 지속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국가보안법과 선거제 개편 등으로 '홍콩의 중국화'에 가속이 붙은 상황에서 홍콩 야권은 홍콩의 법치가 무너졌다고 비판해왔다.
홍콩 정부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아래 홍콩의 사법 독립은 지켜지고 있다며 대표적 근거로 종심법원에 외국인 판사가 대거 포진해 있는 것을 꼽아왔다.
그러나 영국이 홍콩의 사법기구에 대해 '손절'을 선언하면서 향후 종심법원의 외국인 판사 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 영국 "홍콩서 자유와 민주의 약화 목격"
영국 정부는 30일 홍콩국가보안법을 문제 삼아 로버트 리드 대법원장 등 영국 대법원 판사 2명이 홍콩 종심 법원에서 맡아왔던 비상임 판사직을 즉각 그만두기로 했다고 밝히며 향후 홍콩 종심 법원에서 자국 법관들을 영구 철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리즈 트루스 영국 외무장관은 "홍콩 상황이 임계점에 이르러 영국 법관들이 홍콩 최종심 법원에서 더는 직을 유지할 수 없다"면서 "(유지할 경우) 압제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홍콩에서 자유와 민주의 조직적 약화를 목격해왔다"면서 "(홍콩 정부가 홍콩보안법 시행 후)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탄압했다"고 비판했다.
리드 대법원장은 "영국 대법원 판사들이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 가치를 어기는 (홍콩) 행정부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서는 홍콩에서 직을 계속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말로 이번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영국 정부가 문제 삼은 홍콩국가보안법은 2019년 홍콩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이에 놀란 중국 정부가 직접 만들어 2020년 6월 30일 시행했다.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의 시행 전과 후 홍콩의 사회상은 180도 달라졌다.
야권과 시민사회의 대표 인사들이 줄줄이 체포·기소됐고, 빈과일보 등 대표적인 민주 진영 매체들이 폐간됐으며 많은 시민단체와 노조가 자진 해산했다. 또 지난해 12월 입법회(의회) 선거는 야당의 보이콧 속에 친중 진영만의 잔치로 치러졌다.
영국 정부는 법관 철수를 발표하면서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와 47명의 야권 지도자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도 지적했다.
올해 초 홍콩 당국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60여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은 이 법이 반대파를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호하고 가혹한 법이라고 비판한다.


◇ 비상임 외국인 판사 12명…"외국 정부와 긴밀한 법관 임용 어려울 듯"
3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법원에 영연방 출신 외국인 판사를 임용하는 것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훨씬 전인 1980년대부터 논의돼왔으며, 이는 홍콩 자체에 법관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홍콩 성시대 법학자 린펑은 설명했다.
영국은 1984년 중국과 체결한 중영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에서 홍콩에 현직 법관을 파견하는 내용을 포함했고,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면서 현직 법관을 홍콩 종심 법원에 파견해왔으나 30일부로 이를 종료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홍콩중문대 정치학자 마웨는 과거 종심 법원에 몇명의 외국인 판사를 두어야 하느냐를 두고 민주 진영과 친중 진영 사이 논쟁이 붙었으나, 이후 종심 법원의 각 사건마다 한명의 외국인 판사가 참여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으며 이는 홍콩의 법치를 상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현재 홍콩 종심 법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법원에는 16명의 비상임 판사가 있으며, 그중 12명이 외국인이다.
외국인 판사 중 8명이 영국인이며, 나머지는 호주,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8명의 영국 판사 중 2명은 전날 사임을 발표한 이들이며, 6명은 이미 현지에서 은퇴한 법관이라 이번 영국 정부의 법관 철수 결정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SCMP는 설명했다.
홍콩 명보는 "남은 10명의 외국인 비상임 판사들에게 종심 법원에 계속 남을 것인지 물었으나 답변을 회피했다"며 "일부는 다른 판사들과 상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부 법학자들은 향후 외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의 법관을 종심 법원의 비상임 법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부연했다.
앞서 2020년 9월에는 호주 출신 제임스 스피겔맨 판사가 2년 임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사임했다. 그는 이후 호주 언론에 자신의 사임이 홍콩국가보안법과 관련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에는 영국인 비상임 판사 바로네스 브렌다 헤일이 재임용을 한달 앞두고 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헤일 판사는 당시 영국에서 진행된 온라인 포럼에서 "홍콩에서 부상하는 문제는 국가보안법에서 기인한다. 이는 시위와 시민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고 말했다.
홍콩대 법학자 시몬 영은 이번 영국의 결정이 다른 판사들에 연쇄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현재 비상임 판사들은 대부분 은퇴한 법관들이라 자국 정부의 어떤 압력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울 수는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중국 "내정 간섭 중단하라"…홍콩 "홍콩 법치 굳건"
중국과 홍콩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영국 주재 중국대사관은 영국이 정치적 농간을 부리며 홍콩 사무와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홍콩국가보안법이 실시된 뒤 홍콩 사회가 다시 안정되고 법치와 정의가 신장됐으며 수많은 홍콩 민중의 각종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며 "중국은 일국양제 방침을 관철하고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수호하겠다는 결심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이어 "홍콩의 사무는 중국 내정에 속하고 중국이 홍콩을 다스리는 근거는 중국 헌법과 홍콩 기본법"이라고 강조한 뒤 "홍콩을 어지럽히고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법관들의 사임이 홍콩국가보안법 도입이나 언론의 자유, 정치적 자유와 관련됐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홍콩 정부는 또 별도의 성명에서 "영국 법관들의 사임은 외부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그런 일은 홍콩에서는 절대 용인되지 않을 것이며 홍콩의 법치는 굳건하다"고 했다.
중국 외교부 홍콩 주재 사무소는 "홍콩의 법치를 교란하려는 악의적 의도"라고 비난했다.
또 홍콩대율사공회와 홍콩율사회 등 두 변호사협회도 각기 성명을 통해 유감을 표하며 영국 법관들이 사임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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