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회피 아닌 합법중개…EU도 반대하지 않아"
보이콧 취지 훼손 논란…러 철수 기업들 카자흐 손잡을 수도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카자흐스탄이 여론의 비난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수출을 끊는 유럽 기업에 '지하 공급망'을 자청하고 나섰다.
티무르 술레이메노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비서실 부실장은 30일(현지시간) 정치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상업은 상업이고 무역은 무역이며, 기업은 러시아 시장을 나눠 갖고 싶을 것"이라며 그런 의향을 밝혔다.
술레이메노프 부실장은 "유럽 기업은 제재와 대중이나 주주의 압력, 도덕적 명분 때문에 러시아를 떠난다"며 "러시아 주변 어딘가에 있고 싶다면 우리가 그 주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서방의 대러 제재 목록에 오르지 않은 상품의 경우 눈치 볼 것 없이 카자흐스탄을 통해 러시아에 팔 수 있다는 얘기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가 주도해 단일시장을 목표로 결성한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의 구성원으로서 러시아 시장 진입에 특권을 지닌다.
술레이메노프 부실장은 자신의 제안이 제재 회피 수단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운동화나 티셔츠 같은 생필품을 러시아에 합법적으로 판매하는 것을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서방의 수출금지뿐만 아니라 민간의 자발적 거래 중단 때문에 재화와 서비스 공급에 영향을 받고 있다.
술레이메노프 부실장은 러시아를 겨냥한 보이콧 취지를 훼손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제재를 준수하는 한 완전히 괜찮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카자흐스탄은 제재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의무도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여론의 비난을 피해 카자흐스탄을 통해 러시아에 대한 영업을 계속할지를 두고 고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대규모 민간인 피해 소식도 전해지자 각국에서는 러시아와 관계를 청산하라는 압박이 거세졌다.
이 때문에 이미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국제법 위반, 인권 유린 등을 이유로 러시아 사업체를 청산하거나 거래를 대거 축소했다.
러시아에서 철수한 기업은 스포츠 의류회사 나이키를 비롯해 청바지 회사 리바이스, 맥주회사 하이네켄, 가구회사 이케아 등 다양하다.
구소련 국가로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자흐스탄에서는 서방 기업들이 보이콧을 회피하는 장면이 벌써 목격되고 있다.
미국 신용카드사인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러시아 영업을 중단하자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인에게 카드를 개설해주는 서비스가 성행하고 있다.
러시아 관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이런 서비스는 로펌이나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음성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카드를 발급받은 러시아인들은 온라인 쇼핑, 국제 외화 송금, 해외여행 때 카드를 평소처럼 이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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