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발견하면 '담요'…아는 사람 시신 보면 이름 적은 종이 남겨"
생존자들 "우리는 운이 좋았다"…대피 과정에 폭격 쏟아지기도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러시아의 집중 포위 공격을 견디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에 성공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주민들이 '생지옥'으로 변해버린 현장 상황을 증언했다.
탈출 뒤 자포리자의 한 병원에서 부상을 치료받고 있는 한 중년 여성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우리는 파리 같다. 러시아인들이 우리를 하나씩 하나씩 잡아 죽이고 있다. 우리는 인간인데"라고 러시아의 잔혹성을 비판했다.
이 여성의 얼굴은 반쪽이 짙은 청록색 소독약으로 덮여 있었다고 WP는 전했다. 하지만 그의 부상은 딸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다. 딸은 폭격의 잔해에 깔려 눈을 잃었다고 한다. 사위가 딸을 끌어내 현지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 병원마저 폭격의 표적이 됐다.
한 20대 여성은 남자친구와 함께 마리우폴을 탈출했다.
이 여성에 따르면 마리우폴에서는 길바닥 시신에 담요를 덮어주는 것이 상례가 됐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의 시신을 발견하면 이름을 쓴 종이를 병에 넣어서 시신 옆에 둔다고 한다. 나중에 신원 파악을 돕기 위해서다.
이 여성은 어렵게 탈출하고도 남자친구와 함께 마리우폴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마리우폴에 남겨둔 남자친구의 할머니를 구출하기 위해서다.
러시아 측이 미처 피란하지 못한 마리우폴 주민을 강제로 끌어내 러시아의 낙후한 격오지로 보낸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이 여성은 밝혔다. 그는 WP에 "무섭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죄책감에 살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한 커플은 WP에 "동네의 집이란 집은 모조리 무너졌고, 사람들은 다치고, 무너졌다"면서 자신들은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러시아의 포위 공격 초기에는 마리우폴의 도심 광장에 사람이 모여들었다고 했다.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는 유일한 장소여서다. 그러나 이곳도 러시아군의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현지에서 살아남은 사람끼리 차량 32대로 행렬을 이뤄 마리우폴 탈출을 시도했다. 선두 차량에는 '민간인'이라는 표지도 써 붙였다.
이 행렬이 친러시아 반군 측의 첫 검문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기 중인 차량이 300여 대에 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도 여지없이 폭격이 떨어졌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차량 밑으로 숨었고, 일부는 여기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22세 여성은 집에 차가 없어 가족과 함께 차를 얻어타고 마리우폴을 빠져나왔다. 이들을 태워준 차량도 자리가 넉넉지 않아 짐을 버려야 했고, 그러고서도 공간이 부족해 서로의 무릎에 앉아 끼워 타야 했다.
평소 1시간 반 걸릴 거리였지만, 러시아가 이미 점령한 도시 베르댠스크까지 14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베르댠스크에서 우크라이나 통제 지역인 크리비리흐까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합의한 '안전 대피로'(인도주의 회랑)를 지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버스가 대피로를 미처 통과하기도 전에 이 길이 닫히고 말았다.
버스 주변으로 포성이 들려왔지만 천만다행으로 버스는 무사히 해당 지역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앞서 마리우폴에서 여러 번 안전 통로를 열렸으나 포격이 멈추지 않아 시민의 대피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은 서로가 먼저 공격했다며 대피 실패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31일 마리우폴의 시민을 탈출시키기 위해 피란버스 45대를 보냈으나 러시아군의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1일 오전 10시(현지시간·한국시간 오후 4시)부터 마리우폴 시민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회랑을 다시 개방한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확실한 대피를 위해 유엔난민기구(UNHCR)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직접 참여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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