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교실마다 전쟁 걱정에 질문 세례…교사들 난감
각국 지침엔 온도차…"토론 권장" vs "강요하지는 말아야"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러시아는 충분히 큰데 어째서 땅을 더 가지려 하나요?"
잉글랜드 남부 한 초등학교에서 11살 맥스는 선생님에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이같은 질문을 던졌다.
옆자리 제시카는 "이상한 사람들은 왜 전부 남자인가요?"라고 물었고, 이시는 "선생님도 떠나지 않고 싸울 건가요?"라고 질문했다.
질문 세례를 받은 선생님은 잠시 생각한 끝에 "어렵네요, 그렇죠?"라면서 "맞아요, 선생님도 나라를 위해 싸울 거예요"라고 답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31일(현지시간) 유럽 교실에서 이같이 난감한 상황이 속출한다고 전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 각국은 코앞에서 한달 넘게 이어지는 전쟁의 참상을 충격에 빠진 채 목도 중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황 속에 시시각각 뉴스가 쏟아지면서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제대로 설명할 시간도, 정보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한 교사는 "질문을 100개는 받았다"면서 "말도 안되는 대답을 해야하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지금 학생들은 태어나서 동시대 전쟁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이후로 한참 뒤에 태어난 아이들이며,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했을 당시에도 일부만 영유아였다.
이 때문에 이들에겐 틱톡에 뜨는 전쟁 얘기와 실제 상황 사이에서 큰 간극을 느낀다고 NYT는 짚었다.
아이들은 이러한 걱정, 공포, 의문을 교실에서 쏟아낸다.
우크라이나 접경국인 폴란드에서 18살 소년은 전쟁에 징집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고, 프랑스의 10살 소년은 숨어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각국 교육 당국은 교사들이 직면한 난감함을 알고는 있지만 대응에는 나라마다 온도차가 있다고 한다.
영국 교육 당국은 "일부 교사와 학교에는 유례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교실 내 토론을 권장하는 동시에 가짜뉴스를 반박할 자료도 제공 중이다.
프랑스도 교사들에게 내려보낸 지침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역사를 학생들에게 설명해주도록 했으며 다만 이런 설명이 "우크라이나의 독립국 지위를 부정하는 가설로 이어지지 않도록 할 것"을 분명해 했다.
지침은 또 학생들이 전쟁에 대한 토론을 꺼린다면 교사가 이를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우크라이나 접경국인 폴란드에서는 특히 학생들이 먼저 토론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첫날 수도 바르샤바의 한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수업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얘기하자고 요청했다.
교사가 할말 있는 학생은 손을 들라고 하자 전원이 손을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질문 세례를 받은 교사들은 정치, 군사, 역사, 지리 등으로 설명을 해주지만 좀처럼 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은 따로 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이탈리아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푸틴 대통령이 병원에 있는 아이들을 죽였다"는 한 아이의 말에 교사는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며 둘러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교사는 "그들이 어린이를 죽인다고 아이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면서 "그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newgla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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