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순방 중 연설…"키이우 방문 검토 중"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차병섭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이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침공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해 "일부 강력한 통치자(potentate)가 갈등을 일으키고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지중해 섬나라 몰타 순방 중 연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며 "슬프게도 일부 강력한 통치자가 민족주의적 이익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교황이 이날 푸틴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발언의 맥락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푸틴 대통령을 가리키는 게 명확하다는 게 AP통신의 설명이다.
교황이 이렇게 푸틴을 겨냥한 비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교황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철없고 파괴적인 침공"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교황청은 대화의 여지를 열어두기 위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편이고 교황은 이번 침공 이후 푸틴 대통령이나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 왔지만, 이날 발언은 교황이 격노했음을 보여준다고 AP는 평가했다.
교황은 지난달 13일 "도시 전체가 묘지로 변하기 전에 용납할 수 없는 무력 침략을 멈춰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러시아를 직접적으로 지칭한 것은 기도할 때 등으로 한정해왔다.
교황은 이날 "유럽의 동쪽에서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퍼지고 있다"면서 "타국에 대한 침략, 흉포한 시가전, 핵무기 위협은 먼 과거의 암울한 기억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오직 죽음과 파괴, 증오만을 초래하는 전쟁의 찬 바람이 많은 이들의 삶을 강력히 휩쓸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류에게 닥친 전쟁의 밤에 평화를 향한 꿈이 바래지 않도록 하자"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교황은 몰타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우크라이나 정치·종교계의 키이우 방문 요청에 대해 고려하고 있는지 묻는 취재진에게 "그렇다. 그것(방문)은 테이블 위에 있다"고 말했다.
앞서 우크라이나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해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 우크라이나 정교회 스비아토슬라프 셰브추크 상급대주교, 안드리 유라쉬 교황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 등이 교황 방문을 요청한 바 있다.
다만 교황은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이날 교황의 발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 달을 넘기면서 민간인 피해와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유엔 인권사무소에 따르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지난달 29일까지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1천189명, 부상자는 1천901명에 이른다.
외국으로 탈출한 피란민은 400만명을 넘겼고, 남부 도시 마리우폴 등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민간인들은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은 물론 식수·식량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교황은 이날 연설 중 우크라이나 피란민 등을 언급하며 "커지는 이주 비상사태에 대한 광범위하고 공유된 대응이 요구된다"면서 "다른 국가들이 무관심한 방관자로 남아있으면 일부 국가가 전체 문제에 대응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좌골신경통을 앓고 있는 교황은 이날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외 순방 비행기에 걸어서 타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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