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 "러, 물가·GDP 인정 않겠지만 환율은 못숨겨"
GDP -20%·해외투자 대이탈…"환율 유지는 합리적 선전 전략"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서방의 강력한 제재로 경제 위기에 몰린 러시아가 루블화 환율 방어만큼은 선방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달러당 140루블에 육박하던 루블화 환율은 4일(현지시간) 80.05루블을 기록하는 등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에 대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다른 경제 지표와 달리 환율만큼은 숨기거나 조작할 수 없어 러시아가 환율 방어에 모든 힘을 쏟고 있는 결과라고 해석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루블화가 회복된 기이한 사례'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러시아 군인들과 달리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루블화 방어에 성공하면서 전 세계 경제 관계자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오는 6월 말 임기 종료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재임명 제청안을 제출할 만큼 나비울리나 총재를 신뢰하고 있다.
크루그먼은 러시아의 환율 방어 전략에 대해 나비울리나 총재가 모든 수단을 동원한 대응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자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대폭 올렸다.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자본 통제도 가했다.
러시아 정부도 루블화 수요를 늘리기 위해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외화의 80%를 루블화로 바꾸도록 했고, 가스 수출 시 결제 대금을 루블화로만 받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강력한 통화 안정 수단을 동원하면 통화는 안정되더라도 실물경제가 위축을 넘어 불황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런 위험까지 감수하면서도 환율정책에 모든 것을 거는 모습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러시아 경제에서 환율 방어가 모든 경제 목표의 우선순위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러시아 경제가 가까운 미래에 예상처럼 크게 악화하더라도 러시아 관영 언론은 이를 부인할 수 있지만, 환율만큼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푸틴 정권 입장에서는 다른 경제 지표들은 어느 정도 부정하거나 심지어 조작이 가능하지만 외환시장에서 매 순간 결정되는 환율은 사실상 조작이 불가능한 만큼 모든 것을 희생시키면서도 환율을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앞으로 몇 달 동안 물가가 급등하고 국내총생산(GDP)이 급감한다 해도 푸틴 정부가 이를 인정하겠는가. 아마 아닐 것"이라며 "권위주의 정부는 종종 불리한 경제 지표를 숨기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물 경제는 신경 쓰지 않고 루블화를 지키는 것은 선전 전략을 따질 때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크루그먼의 우려대로 러시아 실물경제가 크게 휘청인다는 점이다.
NYT에 따르면 몇몇 분석가들은 올해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20%를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을 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이 러시아 구매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과 고용, 신규 수주액은 크게 감소했다.
소련 붕괴 후 수십 년간 쌓았던 해외 투자자와의 관계도 한 번에 악화했다. 한 추정에 따르면 약 500개의 해외 회사가 러시아 지분 처분이나 투자·운영 철회를 이미 했거나 할 계획이라고 NYT는 전했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러시아는 해외에서 얻은 기술을 국내에서 모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며 이는 전쟁 전에도 미국의 35∼40%에 불과했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데 좋은 신호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NYT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끝나더라도 러시아는 수십 년 전보다 경제적으로 더 고립될 것이고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력도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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