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자 폭증과 상하이 봉쇄 계기로 '소수의견' 고개 들어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하자 중국인들이 자국만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에 근본적 의문을 품기 시작한 모습이다.
당국이 여론을 통제하는 체제 특성상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아직 소수에 그치지만 견고했던 제로 코로나 신화에 균열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올가을 제20차 당대회라는 '대관식'을 통해 장기 집권 시대를 열고자 하는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큰 도전이 될 전망이다.
◇ '최대 업적' 제로 코로나 포기 못하는 시진핑
지난달부터 본격화한 오미크론 감염 확산의 여파로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 더 많은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했다.
3월 1일부터 4월 6일까지 누적 감염자 수는 31개 성급 행정구역 중 29개에 걸쳐 20만명에 육박한다.
선전·창춘·상하이 등 대도시가 잇따라 봉쇄된 가운데 최근 중국에서 계속 높은 사회·경제적 대가를 치러가며 제로 코로나를 유지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점차 생겨나고 있다.
당장 일일 신규 감염자가 거의 2만명에 달하는 상하이에서는 제로 코로나 원칙에 기반한 강력한 감염자 및 밀접 접촉자 격리 정책에 대한 주민들이 반감이 커지고 있다.
정규 병원은 이미 포화 상태가 됐고 감염자와 밀접 접촉자들이 체육관이나 컨벤션 센터에 차려진 격리시설로 가도 적절한 치료를 받기는커녕 집보다 훨씬 못한 열악한 환경에서 장기간 지내야 할 것이라는 공포감에 경증 환자나 밀접 접촉자들이 자가격리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3월 이후 상하이에서 격리된 사람은 감염자 10만명에 밀접 접촉자, 2차 밀접 접촉자까지 더해 20만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 누리꾼은 "무증상 감염자나 경증 환자를 왜 집중 격리해야 하는가, 이것 델타 변이가 아니라 오미크론 변이"라면서 격리 정책 완화 필요성을 주장했다.
상하이 한 주민도 연합뉴스에 "미국 등 세계 많은 나라는 코로나19를 겪고 정상적 생활로 돌아가고 있는데 중국만 계속 벽을 치고 고립되고 있다"며 "중국이 결국 어느 시점에는 문을 열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국은 제로 코로나 원칙을 확고부동하게 유지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무엇보다 시 주석이 2020년 우한 사태를 극복하고 제로 코로나 원칙을 바탕으로 '안전한 중국'을 만든 것을 최대 업적 중 하나로 삼아왔기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 중앙정부와 공산당은 지난 5∼6일 방역 담당 부총리이자 당 정치국원인 쑨춘란을 상하이에 내려보내 '주저하지 않고, 확고하게 제로 코로나를 유지한다', '전국 통일 방역 원칙으로 코로나에 대처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쑨 부총리의 상하이 순시를 계기로 중국에서는 관영 매체들과 전문가들이 총동원돼 제로 코로나의 당위성을 선전하고 있다.
온라인 상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제로 코로나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상하이 등 봉쇄 지역의 '부정적 모습'을 전하는 사람들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에서는 임시 병원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의료진의 모습,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함께 국가를 부르는 주민들의 모습 등 '긍정적'이고 '애국적'인 내용이 넘쳐난다.
관련 법규에 따르면 더우인 등 인터넷 사업자들은 '긍정적 에너지'를 전파하기 위한 콘텐츠가 많이 노출되고 '사회에 해가 되는 내용'들은 걸러내는 방향으로 알고리즘을 관리해야 한다.
이처럼 중국이 '제로 코로나' 견지 방침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은 3월 감염자 폭증, 인구 2천500만명의 상하이 봉쇄를 계기로 중국이 다시 제로 코로나 상태로 돌아갈 수는 있는 것인지, 만일 그것이 가능해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사회적 대가를 치르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에 관한 사회적 의문이 커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당장은 오늘 먹을 것 걱정이지만 봉쇄 장기화로 민생 위기 우려
전문가들은 당장은 큰 경제적 대가를 감수해도 당분간 제로 코로나 원칙을 고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미크론 변이의 감염 치사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중증 환자 대응 능력이 낮은 점, 취약 집단인 노년층의 백신 접종률이 낮다는 점이 중국 당국을 걱정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중국의 인구 10만명 당 집중치료실(ICU) 병실 수는 4.6개에 그친다. 이는 미국(34개), 독일(29.2개), 싱가포르(11.4개), 홍콩(7.1개)보다 낮다. 또 중국의 2차 백신 접종률은 85%에 달하지만 60세 이상 인구의 2차 접종률은 아직 65% 이내로 상대적으로 낮다.
최근 홍콩에 오미크론 감염 파도가 먼저 닥친 가운데 백신 접종률이 낮은 노년층의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크게 높았는데 중국 당국 역시 이런 경험에 크게 주목하면서 아직은 '코로나 공존'을 고려할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상하이에서 정밀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방역 실험을 해 보았지만 감염자 폭증에 놀라 다시 강력한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으로 돌아갔다"며 "중국이 오미크론 변이보다 더욱 약한 변이 출현, 치료제 광범위한 보급 등의 조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회를 보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상하이 봉쇄가 우왕좌왕 식으로 진행되면서 주민들의 불만은 커지고 당국의 신뢰에는 금이 갔다.
상하이시 당국은 지난 28일 전격적으로 도시 봉쇄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봉쇄는 없다면서 시민들에게 식료품 사재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국은 봉쇄가 시작 불과 몇 시간 전인 27일 심야에 봉쇄 계획을 발표했고 이에 놀란 시민들이 밤에 문을 연 가게를 찾아 식료품을 급히 사들이며 큰 혼란이 벌어졌다. 또 상하이시는 당초 도시를 동·서로 나눠 각각 4일씩만 봉쇄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역시 허언이 됐다.
지난 28일 시작된 봉쇄는 7일로 11일째 접어들었지만 아직 이번 봉쇄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없다. 당초 당국이 발표한 4일 봉쇄를 믿고 그에 맞춰 식료품을 준비했던 시민들 대부분이 당장 먹을 것이 떨어져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민들의 원성이 높아질 것을 우려한 당국은 각 가정에 한 차례씩 식료품 꾸러미를 돌리긴 했지만 이마저 받지 못한 가구들도 있다.
문을 연 식료품 가게는 극소수인데 공급은 감소한 가운데 수요가 폭증해 아파트 단지들마다 문을 연 가게를 찾아 공동구매를 진행하는 등의 방식으로 '각자도생'을 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서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며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벌떼처럼 달려들어 먹을 것 사재기에 나섰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는 처지지만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사업자에서 음식점 종업원 등 서비스업 종사자, 건설 일용직 노동자, 공유차량 기사, 음식 배달원 등 수많은 사람의 생계가 위협받게 되면서 당국의 민생 안정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진이 궈하이증권 이코노미스트는 6일 보고서에서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발병·봉쇄 기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어서 봉쇄가 끝난 후에도 수요 충격은 계속될 것"이라며 "소비 충격은 4∼5개월, (당국의) 인프라 투자 제약은 2개 분기에 걸쳐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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