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8구 투표소에 제무르 후보 나타나자 "수치스럽다" 외치기도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4월치고는 바깥 공기가 제법 차가웠지만, 프랑스 파리의 대선 열기는 뜨거웠다.
프랑스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1차 투표가 열린 10일(현지시간) 극우 성향의 에리크 제무르 후보가 투표한 파리8구의 투표소를 비롯한 몇몇 투표 현장을 돌아봤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2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보다 더 오른쪽으로 치우쳐있다는 평가를 받는 제무르 후보가 투표소로 들어갈 때 한 남성은 뒤에서 "부끄럽다"고 외치기도 했다.
제무르가 투표소를 드나들 때 스마트폰으로 계속 촬영했던 40대 여성은 누구를 뽑았는지 밝히고 싶지 않다면서도 "제무르를 빼놓고는 2017년 대선 때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1, 2위를 차지한 후보끼리 24일 2차 투표에서 다시 한번 맞붙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머릿속에 나름의 방정식을 세워놓고 투표소를 찾았다.
쇼핑센터에 근무한다는 마리아(29·여)씨는 야니크 자도 녹색당(EELV) 후보를 택했다며 그의 당선 가능성이 작지만, 지지율과 관계없이 환경·생태가 중요하다는 신념에 따라 그에게 투표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결선에 최근 여론조사대로 연임에 도전하는 중도 성향의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 성향의 르펜 후보가 나온다면 전자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누가 되든 극단적인 인물은 피하고 싶어서다.
자신을 사업가라고 소개한 재귀(74·남)씨는 마크롱 대통령을 뽑았다며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진 지금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로선 프랑스를 위해, 유럽을 위해 마크롱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재귀씨는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를 보호하려면 집단의 힘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에 의존해서는 우리를 지킬 수 없다"며 "유럽연합(EU)의 개념 자체를 싫어하는 르펜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 틀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식품업계에 종사하는 안느 소피(27·여)씨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가장 잘 대변하는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후보를 선택했다며 좌파 진영에서 후보가 난립하는 와중에 내린 "전략적 투표"였다고 밝혔다.
안느 소피씨는 멜랑숑 후보가 이번에도 결선 진출에 실패하고 2017년 대선 때처럼 결선 후보 중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더라도, 마크롱 대통령을 뽑기로 마음먹었다. 좌파 대통령을 원하지만, 그게 힘들다면 최소한 극우 대통령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교사라고 밝힌 티보(27·남)씨는 우파 공화당(LR)을 대표하는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를 찍었다. 일드프랑스 주지사로서 지역 발전을 잘 이끌어왔고, 국내외적으로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티보씨는 페크레스 후보가 결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가 맞붙는다면 마크롱 대통령을 택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민 정책에 있어서 유난히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는 르펜 후보가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투표소 앞에서 식자재로 가득 찬 장바구니를 짊어진 중년 남성,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젊은 부부, 정치적 성향이 다른 20대 커플 등에게 어떤 후보를 선택했는지 물어봤지만, 르펜 후보를 지지한다는 유권자는 만나지 못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각각 1, 2위를 차지해 결선에 진출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수도권에서는 르펜 후보의 지지세가 강하지 않다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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