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은행이 후원하는 악단 공연 불가"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러시아 제재의 불똥이 클래식 음악계에도 튀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우크라이나를 후원하기 위해 열릴 예정이던 자선콘서트가 러시아 대형 은행의 재정 후원을 받는 러시아 악단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전격 무산됐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음악의 도시 빈에서 최고의 클래식 공연장으로 꼽히는 콘체르트하우스가 주최한 이번 콘서트는 공연 하루 전인 10일(현지시간) 갑작스럽게 취소됐다.
러시아계 그리스 스타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의 지휘로 무대에 설 예정이던 오케스트라 '무지카 에테르나'가 러시아 악단이면서 현지 대형 은행인 VTB방크에서 재정 후원을 받는 점이 문제가 됐다고 NYT는 전했다.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최근 VTB방크를 비롯한 러시아 주요 금융기관을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빈 콘체르트하우스는 우크라이나를 돕는다는 자선 공연에 러시아 후원을 받는 러시아 예술가들을 출연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오스트리아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의 지적을 받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마티아스 나스케 빈 콘체르트하우스 예술감독은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러시아의 공격으로 야기된 크나큰 고통의 시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본부를 둔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관한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 범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절망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지카 에테르나가 독립적인 재원을 확보할 때까지 이 단체가 출연하는 향후 행사에 대한 티켓 판매도 중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논쟁적인 음악 해석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지휘자 쿠렌치스가 2004년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창단한 소형 합주단으로 시작한 무지카 에테르나는 2011년 러시아의 소도시 페름에서 오케스트라로 확대 개편된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쿠렌치스의 조련 아래 록 음악을 방불케 하는 강렬하고 극적인 클래식 연주로 유명한 이 악단은 2019년에는 러시아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기반을 확장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쿠렌치스는 자신이 수석 지휘자를 겸하고 있는 독일 SWR 심포니오케스트라를 통해 지난달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에서의 평화와 화해를 강조했으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정부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다.
무지카 에테르나는 향후 수주 안에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에서의 순회 공연이 예정돼 있고 올여름에는 유서 깊은 음악 축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도 설 계획이지만 공연이 성사될지 확실치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예술가들의 공연이 취소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러시아 출신의 상당수 저명한 예술가들이 푸틴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무대에서 쫓겨나고 있다.
세계 정상급 소프라노인 안나 네트렙코는 지난달 초 푸틴 대통령에 대한 공개 지지를 철회하라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메트)의 요청을 거부하다 오페라 출연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는 이후 지난달 말 반전 메시지를 내면서 5월부터 무대에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월 말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에는 친(親)푸틴 피아니스트인 데니스 마추예프의 출연이 취소되면서 우리나라의 조성진이 대타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