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50일] 글로벌 경제 뒤흔든 전쟁…전세계 인플레 강타

입력 2022-04-13 14:50  

[우크라 침공 50일] 글로벌 경제 뒤흔든 전쟁…전세계 인플레 강타
에너지·곡물 대국끼리 전쟁에 수십년 만에 최고 물가 상승
서방, 물가상승 무릅쓴 대러 제재 강화…에너지 제재는 여전히 이견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은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허약해진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다.
공교롭게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에너지와 식량을 글로벌 시장에 대량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해 왔던 터라 그 파급력은 더욱 컸다.
전쟁 발발로 원유, 가스, 석탄 등 화석 에너지뿐 아니라 밀, 옥수수와 같은 곡물, 금속 자원 가격이 급등했다.
배럴당 90달러대였던 국제유가는 개전 2주도 안 돼 배럴당 130달러(약 16만원)선을 돌파했다가 미국을 비롯해 각국이 전략 비축유를 풀겠다고 발표한 4월이 돼서야 90∼100달러 선으로 내려왔다.
유럽 시장의 천연가스 가격을 대표하는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침공 전 ㎿h당 70유로대에서 11일 100유로 선으로 오른 상태다.
미국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11일 종가 기준 100만BTU(열량단위)당 6.62달러를 기록하며 2018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식량 가격도 급등세다.
지난 9일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식량가격지수(FFPI)는 전달보다 대비 12.6% 오른 159.3포인트를 기록했다. 지수가 도입된 1996년 이래 최고치다.
국제 식량 가격의 상승은 전세계 '밥상 물가'에도 직접 영향을 줬다.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8.5% 급등해 1981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3월 7.3%)의 물가상승률은 1990년대 초 통일 이후, 스페인(3월 9.8%)도 37년 만에, 영국(2월 6.2%)은 30년 만에 가장 높았다.
한국도 3월 소비자물가가 작년 동월보다 4.1% 올라 2011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4%대를 기록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선진국 경제 중 물가 상승률이 5%를 넘는 국가의 비중이 60%에 달했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최대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선진국보다 경제 기반이 허약한 저개발국은 가격이 오른 에너지, 식량 수급이 어려워져 민생고가 촉발한 2011년 중동·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과 같은 사회·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발전용 원료를 들여오지 못하게 된 스리랑카는 전력난이 심화한 끝에 12일 일시 디폴트(채무 불이행)까지 선언했고 주요 도시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도 경제난 속 임란 칸 전 총리가 의회 불신임 가결로 물러났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페루에서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11일 이번 전쟁이 세계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줬다며 "이번 위기가 경제 성장률을 0.7∼1.3%포인트 낮춰 일부 지역의 올해 성장률은 3.1%∼3.7%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너지·식량의 주요 공급자이기도 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는 세계 경제를 불안케 하는 '양날의 칼'이지만 서방의 압박은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과 주요 7개국(G7)은 러시아의 주요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은 물론 두 딸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제재 대열에 앞장서는 미국은 지난달 8일 국내 물가 상승 우려에도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입을 금지하는 제재를 발표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 8일까지 제제를 다섯 번이나 내놨다.
EU는 최신 제재에서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중단하는 제재를 가했다. 이 조처는 EU가 러시아의 에너지 부문에 대한 첫 제재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이런 제재조차도 여전히 EU가 러시아 에너지 분야에 손을 대는 데 주저하고 있다는 비판을 해소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아직 합의되지 못한 석유, 천연가스와 비교하면 비중이 적어 '손쉬운 제재'이기 문이다.
EU 원유 수입량 중 러시아산 비중은 25%, 천연가스의 경우 40%에 달한다.
러시아산 원유·가스 금수가 합의되지 못하는 것은 EU 최대 경제 강국 독일의 태도가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0일 독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독일은 우리에게 소극적이고 냉정한 모습에 머물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pual0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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