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외막 조각 이동할 때 PD-1 단백질 섞여 들어와
캐나다 오타와대 연구진,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T세포가 활성화하면 표면에 PD-1(Programmed cell death protein 1)이라는 단백질이 발현한다.
암세포 표면의 PD-L1이나 PD-L2 같은 단백질이 T세포 표면의 PD-1과 결합하면, T세포는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한다.
암세포의 이런 T세포 교란 책동을 막는 게 '면역 관문 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s) 또는 'PD-1 억제제'(PD-1 inhibitors)로 불리는 면역항암제다.
이런 항암제는 T세포의 PD-1 수용체에 먼저 달라붙어 암세포의 교란 행동을 억제한다.
선천 면역계의 NK세포(Natural Killer cells)는 암세포를 파괴하는 주 공격수다.
그런데 NK세포가 혈액암 세포와 만나면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휴면 상태에 빠진다는 걸 캐나다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NK세포가 암세포의 외막 조각을 뜯어낼 때 PD-1 단백질이 섞여 들어오는 게 원인이었다.
비유하자면 NK세포가 가져가는 외막 조각에 암세포가 수면제(PD-1)를 몰래 넣는 것과 비슷하다.
NK세포가 암세포의 외막 조각을 가로채는 건 면역계에 암세포의 정체(항원)를 알리는 정상적인 행동이다.
NK세포 외에 T세포, B세포 등의 면역세포도 처음 만나는 세포의 외막 조각을 뜯어낸다.
의학계에선 이런 '막(膜) 이동'(membrane transfer)을 '트로고사이토시스'(trogocytosis) 현상이라고 한다.
NK세포는 트로고사이토시스를 통해 암세포 외막의 항원 분자를 추출한 뒤 자기 표면에 제시한다.
캐나다 오타와대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13일(현지시간)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논문으로 실렸다.
실제로 모든 유형의 면역세포는 트로고사이토시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트로고사이토시스를 통해 면역반응이 조절되는 분자 메커니즘은 지금까지 잘 몰랐다.
오타와대 연구팀도 PD-1 단백질이 NK세포의 암세포 공격을 방해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NK세포가 어떻게 PD-1을 생성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이번 연구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미켈레 아르돌리노 조교수는 "NK세포가 자체적으로 PD-1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암세포로부터 가져오는 것"이라면서 "NK세포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진 모르지만, 암 종양이 (PD-1으로) NK세포를 잠들게 함으로써 면역 공격을 피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인간 백혈병이 생기게 조작한 생쥐 모델에 실험했다.
이 과정에서 면역세포가 암세포의 외막을 가져왔을 때 면역 조절 효과가 생긴다는 걸 확인했다.
이런 형태의 '막 이동'은 암세포 등 표적의 외막에 든 단백질이 면역세포로 옮겨지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NK세포는 이런 방식으로 바이러스 감염 세포로부터 바이러스 단백질을 확보한다.
실험한 생쥐 모델에서도 림프구와 종양 세포 간의 트로고사이토시스는 매우 높은 비율로 이뤄졌다.
NK세포만 그런 게 아니었다. 트로고사이토시스가 진행되는 동안 '세포 독성 T세포'(CD8+ T cells)도 혈액암 세포로부터 PD-1 단백질을 가져왔다.
특히 NK세포 표면의 PD-1은 하나도 예외 없이 SLAM 수용체 의존(SLAM receptor-dependent) 방식으로 혈액암 세포에서 건너온 것이었다.
이렇게 이전된 PD-1이 NK세포의 항암 면역을 강력히 억제한다는 것도 분명히 확인됐다.
원래 PD-1 억제제는 탈진한 T세포를 깨우는 약으로 개발된 것이다.
이런 유형의 항암제는 지금도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특히 혈액암, 폐암, 피부암 등의 진행 억제에 효과적인 거로 알려졌다.
이번 연구는 PD-1 억제제가 NK세포의 암세포 공격력을 북돋울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이처럼 PD-1 억제제가 여러 유형의 면역세포에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개별적으로 상세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과학자들을 말한다.
현재의 PD-1 억제제를 개선해 더 효과적인 항암 면역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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