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분노 당연…바로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IMF에 긴급 자금 지원 요청…총리 "대통령 권한 축소 추진"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국가 부도 상황에 직면한 스리랑카의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경제 위기를 초래한 정책적 실수를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외신과 스리랑카 언론에 따르면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은 전날 신임 장관 17명을 임명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나라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국제통화기금(IMF)과 더 일찍 접촉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스리랑카는 19일부터 24일까지 미국에서 IMF와 구제금융 지원과 관련한 공식 협상을 벌인다.
이와 관련해 스리랑카 재무부는 19일 IMF에 긴급 자금 특별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와 야권은 스리랑카의 경제 위기가 이미 지난해부터 본격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IMF와 협상이 상당히 늦었다고 지적해왔다.
IMF와 협상이 늦어진 것은 최근까지 중앙은행 총재를 맡았던 아지트 카브랄이 강력하게 반대한 게 큰 이유로 알려졌다.
결국 스리랑카는 외화 보유고가 바닥날 정도로 경제 위기가 심화했고 대통령은 이달 초 카브랄을 사실상 경질한 후 IMF와 협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또 유기 농법을 전면 도입하겠다며 화학 농약과 비료의 사용을 금지했던 것에 대해서도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앞서 스리랑카에서는 지난해 초 농약·비료 금지 조치가 도입되면서 농업 현장에서 큰 혼란이 발생했다.
농약 사용 중단으로 소출이 급감할 것을 우려한 농민 상당수가 경작을 아예 포기하는 사태가 이어졌고 야당과 농민은 연일 시위를 벌였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관련 정책을 철회했다.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스리랑카 경제는 2019년 부활절 테러,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겹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와중에 대외 부채 확대, 지나친 감세와 과도한 자국 화폐 발행 등 재정 정책 실패가 겹치면서 최악의 경제난 수렁으로 빠졌다.
외화가 부족해지면서 석유, 의약품, 종이, 식품 등 생필품난이 발생했고 물가는 연일 급등했다. 주유소에는 기름을 사기 위한 줄이 이어졌다.
콜롬보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는 시위 텐트촌이 등장했고, 최근에는 야권이 지방에서 콜롬보로 행진하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도 벌이고 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국민이 이런 경제 위기로 인해 엄청난 압박에 시달린다는 점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높은 가격의 필수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선 국민이 드러내는 분노는 당연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를 바로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하며 모든 정당은 위기 해결에 동참해달라"면서 "우리는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민심이 들끓자 대통령의 권한을 의회로 분산하려는 움직임도 나왔다.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는 19일 의회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의회에 힘을 싣기 위한 헌법 개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리랑카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총리도 내정에 상당한 권한을 갖는 등 의원내각제 요소가 가미된 체제를 운용 중이다.
이런 스리랑카 정계는 라자팍사 가문이 완전히 장악한 채 사실상 '가족 통치 체제'가 구축된 상태다. 대통령과 총리는 형제 사이다.
정부는 이달 초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때까지 510억달러(약 62조9천억원)에 달하는 대외 부채 상환을 유예한다며 일시적 디폴트까지 선언한 상태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날 스리랑카가 연속적인 디폴트로 향해 가고 있다며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Caa2'에서 'Ca'로 두 단계 하향 조정했다.
Ca는 디폴트 바로 위의 '디폴트 임박' 등급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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