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못 참겠다" 진료 못받아 극단적 선택…상하이의 민낯

입력 2022-04-19 14:29  

"고통 못 참겠다" 진료 못받아 극단적 선택…상하이의 민낯
유족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
누리꾼 "병원 15곳 중 2곳만 진료…왜 숨지는지 알겠다"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가족에게 작별을 고해야겠어. 고통 참을 수 없어. 생의 종점에 다가온 것 같아"

지난 14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상하이의 한 시민이 남긴 짤막한 유서다.
18일 유족이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올린 글에 따르면 상하이 교향악단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천순핑씨 가족에게 닥친 비극은 하룻밤 사이 벌어졌다.
지난 13일 오후 9시께 천씨가 복통 증세를 보이자 이리저리 구급차를 요청한 가족은 "대기자가 많다.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오후 11시 47분께 어렵사리 배정받은 구급차에는 이미 2명의 환자가 타고 있었다.
구급차만 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병원 응급실 문턱은 철벽과도 같았다.
첫 번째로 간 병원의 간호사는 "수용 환자들은 모두 코로나19 감염자들"이라며 진료를 거절했다. 다른 병원을 찾아갔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구급차에 있던 의사는 "심한 병이 아니니 약 몇 알 복용하면 된다"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라 문을 연 약국을 찾을 수 없었던 천씨는 점점 심해지는 고통을 참으며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오전 8시 천씨는 아파트 단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천씨의 부인은 "남편은 퇴직한 후에도 자선 공연을 하고, 병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이웃과 사회를 위해 일했다"며 "단란했던 가정이 하룻밤 새에 풍비박산 났다"고 흐느꼈다.
천씨의 아들은 웨이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불치병 때문도, 교통사고 때문도 아니었다"며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고 싶지 않다"며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만 바랄 뿐"이라고 글을 맺었다.
앞서 랑셴핑 홍콩 중문대 석좌교수도 지난 11일 웨이보에 98세 모친이 신장질환 치료를 받기 위해 상하이의 한 병원에 갔으나 핵산(PCR) 검사를 받고 4시간 동안 결과를 기다리다 응급실 문 앞에서 숨졌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달 30일에는 천식 환자가 구급차의 늑장 대응으로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숨지는 일이 벌어져 상하이 방역 당국이 공식으로 사과했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 "왜 상하이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지 이유를 알았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그는 "1시간 30분 동안 15곳의 병원에 전화를 걸었으나 12곳이 불통이었다"며 "2곳만 정상적으로 진료했고, 한 곳은 등록 환자만 받았다"고 전했다.
병원들은 현지 매체에 "전화가 너무 많아 걸려와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중국 당국이 핵산 검사를 이유로 진료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며 의료시설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라고 지시했으나 상하이에서는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웨이보에는 코로나19 방역에 밀려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상하이 시민이 적어도 수백 명에 달한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생필품 공급 차질과 물류난, 생산시설 가동 중단 등 상하이의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 형국이지만, 중국 지도부가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면서 나타난 일이라는 분석이 많다.
방역에 실패하면 해임 등 엄중한 문책이 뒤따르고, 연일 2만 명대의 신규 감염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방역에 올인하다 보니 일반 환자 진료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하이 제2 군사대학병원인 창정병원의 부원장을 지낸 무샤오후이는 최근 소셜미디어에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일반 환자들의 피해가 오미크론의 피해를 훨씬 초과했다"며 당국이 과학적인 접근을 할 것을 촉구했다.
20일까지 '사회면 제로 코로나'(신규 감염자가 격리 통제구역에서만 발생, 지역사회 전파 위험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상황) 달성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진 상하이시로서는 이미 30만 명을 넘어선 누적 감염자를 감당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일 수 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보다 우월하다는 자긍심이 충만했던 상하이 시민들은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봉쇄와 생필품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할 정도로 도시 기능이 속수무책 무너진 데 대한 당혹감과 분노를 표출한다.
소셜미디어에는 "어쩌다 상하이가 이 지경이 됐느냐"는 원성이 쌓이고, 은어를 사용해 무능한 관료들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사이버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pj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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