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 인슐린 세포의 '유전자 신분증', 당뇨병 치료 신기원 열까

입력 2022-04-20 17:33  

췌장 인슐린 세포의 '유전자 신분증', 당뇨병 치료 신기원 열까
세포 유형별 '유전자 발현' 패턴 확인→베타 세포 치환 치료 '청신호'
췌장 세포 '줄기세포 가설' 사실과 달라, 줄기세포는 배아 단계만 존재
스위스 제네바 의대 연구진,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등에 논문 두 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췌장은 우리 몸의 대사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췌장엔 알파, 베타, 델타, 감마 등 여러 유형의 내분비 세포가 존재한다.
인슐린, 글루카곤 등 각각 다른 호르몬을 분비하는 이들 세포는 '랑게르한스섬'이라는 섬 모양의 췌장 조직에 모여 있다.
췌장의 베타 세포가 파괴되거나 그렇지는 않은데 충분한 양의 인슐린을 만들지 못하면 먼저 고혈당증(hyperglycemia)이 오고 머지않아 당뇨병으로 이어진다.
당뇨병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췌장 베타 세포의 재생 및 대체 치료에 관심을 가졌다.
여러 유형의 췌장 내분비 세포를 출생 후에도 계속 만들어내는 '성인기 췌장 줄기세포'의 가설적 존재를 놓고도 논란을 빚어 왔다.
과학계를 시끄럽게 했던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베타 세포가 분화하는 췌장 줄기세포는 오로지 배아 발달 단계에만 존재한다는 게 요지다. 출생 후엔 이런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또 췌장 내분비 세포의 유전자 '신분증'(identity card)과 마찬가지인, 세포 유형별 유전자 발현 패턴도 확인했다.
장차 이 발견은 췌장의 다른 세포가 베타 세포 대신 인슐린을 분비하게 하는 '세포 치환 요법'(cell replacement therapies)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거로 기대된다.
이 연구는 스위스 제네바대(UNIGE) 의대 당뇨병 센터의 페드로 에레라 교수팀이 수행했다.
연구 결과를 담은 두 편의 논문은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과 '셀 리포트'(Cell Reports)에 각각 실렸다.





20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에레라 교수팀은 10년 넘게 당뇨병의 세포 치환 요법을 연구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2019년에 발표된 논문이다.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 세포가 완전히 파괴되거나 기능 이상에 빠질 경우 다른 유형의 췌장 세포가 대신 인슐린을 만들 수 있다는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물론 알파 세포가 분비하는 글루카곤이 그렇듯이 췌장의 다른 내분비세포가 생성하는 호르몬도 인체의 대사 균형 유지에 필요하다.
그러나 생쥐와 인간 모델에게서 모두 관찰된 이 현상은 췌장 내분비 세포의 높은 적응성(plasticity)을 보여줘 관심을 모았다.
아울러 새로운 당뇨병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발표된 두 편의 논문은 훨씬 더 진전된 내용을 담았다.
연구팀은 먼저 '셀 리포트'의 커버 스토리 논문에서 '성인기 췌장 줄기세포' 가설이 오류라는 걸 입증했다.
췌장 내분비 세포는 그 유형과 상관없이 배아 발달기에만 나타나는 선조 세포(progenitor cell)에서 유래한다는 걸 밝혀낸 것이다.
에레라 교수는 "지금까지도 일부 과학자는 췌장 줄기세포가 평생 지속한다고 믿고 있다"라면서 "연구 결과 이런 가설은 사실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유전적으로 조작한 생쥐 모델에 실험했다.
췌장 내분비 세포의 유형을 구분해 '형광 트레이서'(fluorescent tracer)를 단 뒤 생후 10개월이 될 때까지 발달 단계별로 추적했다.
보통 '추적자'로 통하는 '트레이서'는 인체 내부 관찰에 이용하는 극미량의 방사성 물질을 말한다.





19일(현지 시각)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린 논문은 췌장 내분비 세포의 유형별로 유전자 발현 특징을 상세히 묘사했다.
이 발견은 고장 난 베타 세포를 다른 세포로 대체하는 당뇨병 치료법 개발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세포 치환 요법은 크게 두 과정으로 구성된다.
먼저 베타 세포 외의 다른 유형 세포가 인슐린을 분비하게 유전자를 조작해야 하고, 그다음엔 이런 세포의 적응성을 이용해 췌장의 재생을 자극해야 한다.
이처럼 안정적으로 기능적 정체성을 보이는 '대리 세포'(surrogate cell)를 만들어내는 건 퇴행성 질환의 세포 기반 치료법 개발에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세포의 유전적 정체성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도구가 꼭 필요하다고 한다.
에레라 교수팀은 광범위한 단일세포 전사체학 메타 분석을 통해 췌장 랑게르한스섬에서 분리한 내분비 세포의 유형별 유전자 발현 패턴을 분석했다.
이렇게 강하게 발현하는 유전자 세트를 확인함으로써 세포 유형별로 유전적 특징을 소상히 규정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번 연구 결과가 곧바로 임상에 적용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관련 연구 등에 활용되는 가치는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에레라 교수는 "세포의 정체성 구축을 제어하는 메커니즘을 상세히 밝혀낸 것"이라면서 "당뇨병과 같이 특정 세포 유형의 상실과 연관된 질환의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혁신적인 접근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che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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