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나치와의 싸움" 독려…우크라 정보기관, 통화 도청내용 공개
"푸틴 여론통제 성공 사례…TV로 정보 얻는 고령층, 당국 선전에 취약"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러시아에 있는 가족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에 싸우고 있는 아들, 남편 등에게 민간인 학살을 부추기고 있다는 정황이 공개됐다.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인 국가보안국(SBU)은 군사작전 중 의욕을 잃은 한 러시아 병사가 자신의 어머니와 한 통화를 도청했다며 그 내용을 이날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통화 내용을 보면 한 병사의 어머니는 "아들, 기죽지 마"라면서 "그들(우크라이나군)이 하는 짓만 봐도 네가 거기(우크라이나)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이 사실을 잊지 말렴"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당황한 듯 "우리가 하는 일이 뭔데. 민간인과 아이들을 죽이는 일?"이라고 반문했다.
이에 어머니는 "네가 하는 일은 민간인과 아이들을 죽이는 게 아냐. 망할 나치를 죽이고 있는 거야. 엄마를 믿어"라고 강조했다.
SBU는 러시아 매체들이 이 여성에게 우크라이나에서 자국이 전쟁 명분으로 꺼내든 '비나치화'처럼 정당한 작전을 수행 중이라는 의식을 심어줬다고 주장했다.
더타임스도 이를 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내 언론과 여론의 통제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사례로 진단했다.
이 신문은 지금까지 당국의 선전·통제 탓에 신뢰할 만한 여론 조사가 거의 없다면서도, 독립 러시아 여론조사 단체 '익스트림 스캠'이 지난달 초 내놓은 조사 결과를 근거로 고령층일수록 전쟁에 찬성한다고 분석했다.
개전 초기인 2월 28일부터 지난달 1일까지 러시아인 1천64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이 조사에 따르면 전선으로 나서는 연령층인 18∼30세 남성 중 전쟁을 지지하는 비율은 34%에 불과했다.
그러나 41∼55세 여성에서는 이 비율이 60%로 늘어났고, 66세 이상 여성에서는 74%까지 높아졌다.
가장 찬성 비율이 높은 집단은 56∼65세 남성으로 81%를 기록했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러시아·중앙아시아 연구원 막시밀리안 헤스는 러시아 고령층이 2차 대전 당시 나치와 대적했던 소련 시절을 몸소 경험했거나 관련된 이야기를 접해온 집단이라 '우크라이나에 파시스트가 있다'는 러시아의 선전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 고령층은 다른 매체보다 TV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경향이 큰데, TV는 당국이 통제하고 있다"면서 "이 고령층이 푸틴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가 개전일인 2월 24일부터 30일까지 러시아 내 성인 1천63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83%로, 최근 수년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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