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러 성향 주민들도 생각 바꿔"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당신이 어떤 기사를 써도 현실의 20%에 불과할 거예요."
21일(현지시간) 자신을 '올가'라고 밝힌 여성은 뉴욕타임스(NYT) 기자에게 두달 가까이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의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올가는 전날 마리우폴에서 가까스로 민간인 대피 버스를 타고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이날 자포리자에 도착했다.
마리우폴을 벗어나는 데엔 성공했지만 이후 수차례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러시아군이 갑자기 버스를 멈춰 세우지 않을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딸과 손자, 반려견과 함께 대피했다는 올가는 "시내는 폐허로 변했고 유리 파편과 전선, 시신들이 뒤섞여 널려 있다"면서 "러시아군은 시신을 학교와 아파트 인근에 매장했다. 딱히 묻을 데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전했다.
올가는 "길을 따라가면 시신이 보이고, 그 옆에 또 시신이 있었다. 이 시신들은 수주일간 그렇게 널려 있었다"고 말했다.
올가의 딸 사샤도 "마리우폴은 파괴돼 사라졌다"면서 "폭격을 피하거나 불타지 않은 집은 몇 채 없다"고 말했다.
사샤는 폭격으로 도시와 외부를 연결하는 일부 다리가 파괴된 이후로는 가족이 대피하기 더 어려워졌다면서 한때는 걸어서라도 마리우폴을 탈출할 생각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탈출한 주민들은 도시 내 친러 성향 주민들도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에 고통받은 이후에는 생각을 바꿨다고 증언했다.
마리우폴은 친러시아 세력이 자리 잡은 동부 돈바스 인근에 있어 러시아에 우호적인 주민 비율이 높고 러시아어 사용자도 많다.
전날 남편과 어머니, 아들, 반려묘와 함께 자포리자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나탈리아 포프코는 러시아의 침공 당일까지도 많은 이웃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전했다.
개전 초 도시에 미사일이 떨어져 지하실에서 대피 생활을 하던 중에도 이웃들은 러시아의 주장을 믿고 수도 키이우에 있는 '나치' 정권 탓에 이런 고생을 한다고 불평했다고 말했다.
포프코는 "그런데 곧 식량이 떨어지고 물도, 가스도, 전기도 없는 상태가 됐다"면서 이후 이웃들은 러시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르'라고 자신을 소개한 탈출 주민은 "나는 본래 우크라이나 국기와 비시반카(전통 의상)를 보면 질색했던 사람이었다"면서 "그러나 러시아와 얽혀 이런 사태를 겪고 난 지금은 조국의 국기가 나부끼는 것을 보니 고향에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마리우폴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인도주의적 위기가 가장 심각한 도시로 거론돼 왔다.
대부분 지역을 러시아군이 장악해 정확한 우크라이나 민간인의 피해 규모는 파악되지 않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적어도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보고 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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