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 공통 성지인 동예루살렘의 올해 4월은 이슬람의 금식 성월 라마단과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대 명절 유월절이 겹치면서 성지 참배를 둘러싼 갈등으로 시끌시끌합니다.
이슬람교도에게만 예배가 허용된 3대 성지 알아크사 사원 경내에 유월절을 맞은 유대교도들의 대규모 방문이 갈등을 불렀고, 이스라엘 경찰이 개입하면서 수백 명의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가자 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로켓과 전투기 공습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난리 통에도 동예루살렘의 기독교 성지에서는 정교회 부활절(4월 24일)을 맞아 '성령의 불'(Holy fire) 의식이 진행됐습니다.
12세기에 정교회 신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땅에 묻혔다가 부활한 것으로 여겨지는 곳에 회당을 세웠는데, 부활절 자정에 이 회당에서 인위적인 점화 장치 없이 불이 붙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신자들은 이 불을 신의 징조로 여깁니다.
올해 부활절 자정에도 어김없이 예루살렘 정교회 주교가 예수의 무덤 자리에 있는 작은 예배당(Edicule)에 들어가 불을 붙여 나왔습니다.
신도들은 주교가 가져온 성령의 불을 각자의 초에 옮겨 붙여 어두운 회당을 밝힙니다.
또 불은 특별기편으로 다른 나라의 정교회로 전파됩니다. 예루살렘 성묘 회당에서 채화된 성령의 불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라고 합니다.
인위적인 장치 없이 불이 붙는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지만, 기적의 점화 장면은 비밀에 부쳐진 채 의식은 수 세기 동안 진행되어 왔습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지난 2년간 소규모로 진행되어온 부활절 '성령의 불' 의식은 올해도 안전 등 문제로 4천 명의 신도만이 참석한 채 열렸다고 합니다.
지난해 유대교도들의 메론산 압사 사고 이후 같은 사고의 반복을 우려한 당국의 인원 제한 때문입니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두 국가의 순례객들도 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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