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공습 표적될라 미사참례 자제…북적이던 분위기 실종
"새벽은 온다" 소망…푸틴, 측근인 정교회 수장 집전미사 참석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 24일(현지시간) 오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는 성 볼로디미르 대성당.
바구니를 든 신자 수백명이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이 대성당에 길게 줄을 섰다.
대성당 안에서는 한 여인이 군인의 팔을 움켜쥐고 팔꿈치에 짧게 입맞춤을 했다. 다른 군인들은 촛불을 들었다.
나이 든 한 여성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촛불을 들고 신자들 속으로 천천히 지나갔고, 또 다른 젊은 여인은 한 손에 수선화를 들었다.
대성당 밖에서는 군인 1명이 자신의 헬멧을 부활절 바구니로 대신했다. 그는 "헬멧을 바구니로만 사용하면 좋겠다"고 했다.
러시아 정교회의 부활절인 이날 북적북적해야 할 우크라이나 교회는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경건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러시아가 침공한 지 정확히 두 달이 되는 날이었다.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고 러시아 미사일에 수천명이 목숨을 잃고 도시는 폐허가 됐다.
AP와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부활절 미사는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열렸다. 그러나 러시아 침공으로 이미 교회 상당수 파괴됐다.
이날 교회를 찾은 신자도 예년보다 크게 적을 수밖에 없었다.
500만명이 넘는 우크라이나인들은 국경을 넘어 피란을 떠났다.
교회도 올해는 미사 참석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러시아 미사일의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부활절만이라도 휴전을 하자고 러시아 측에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신자들은 전장에서 결사항전을 하는 군인들과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곳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이들을 위해 두 손을 모았다.
러시아군이 들이닥쳤던 체르니이우 인근 마을에 사는 올레나 코프틸 씨는 러시아군이 철수할 때까지 한 달 동안 집 지하에서 지내야만 했다.
그는 "부활절이 조금의 기쁨도 가져다주지 않았다"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잊을 수 없다"고 울먹였다.
그래도 우크라이나인들은 부활절이 평화를 위한 제스처가 되기를 희망했다.
68세의 카테르냐 라자렌코씨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떤 끔찍한 일이 있더라도 부활절을 축하할 거야"라고 했다.
세르힐이나라는 이름의 남성은 "교회가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부활절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1천년 된 키이우의 성 소피아 대성당 안에서 그는 영상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가져온 어둠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승리를 믿고 있고 어떤 무리나 사악함도 분명 우리를 파괴되지 못할 것"이라며 "하느님이 어린이에게 행복을 돌려주고, 슬픔에 빠진 엄마에게 위로를 줄 것"이라고 희망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곧 새벽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4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부활절 미사에 참석했다.
이날 미사는 크렘린궁 인근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에서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키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가 집전했다.
taejong7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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