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부품·완제품 공급 부족에 글로벌 물가 상승 가속 우려도
중국 정상화돼도 묶였던 화물량 일시 폭발에 물류대란 우려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김윤구 기자 = 전 세계 공급망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불의의 일격을 맞은 데 이어 중국 상하이 봉쇄로 인해 '그로기' 상태로 치닫고 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경제 중심지인데다가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항구를 둔 상하이가 한 달째 봉쇄되면서 국제적인 물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26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세계 무역의 12%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상하이 등 주요 도시가 봉쇄됨에 따라 많은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고 트럭 운송 차질과 항만 화물 적체가 빚어지고 있다.
해운 데이터회사 '윈드워드'는 이달 19일 현재 중국 상하이항을 비롯한 중국 내 항만 부두에 접안을 기다리는 선박이 506척으로, 코로나19 봉쇄가 있기 전인 2월 260척의 거의 곱절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운항 중인 컨테이너선의 20%가량인 1천826척이 세계 각국 항만 인근 연안에서 대기 중인데, 이런 대기 선박의 27.7%가 중국에 있는 셈이다. 2월 당시 중국 연안 대기 선박의 비중 14.8%의 2배 가까이로 확대됐다.
대기 선박이 급증한 것은 정상 가동 중이라는 중국 당국의 설명과 달리 상하이항에서 화물 처리가 심각하게 지연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공급망정보업체 '프로젝트44'에 따르면, 상하이항에 하역된 수입품 컨테이너가 트럭에 실려 중국 내 목적지로 수송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지난 18일 기준 평균 12.1일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봉쇄가 시작된 지난달 28일 평균 4.6일에 비해 거의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상하이항 적체 현상의 주범으로 꼽히는 것은 중국 내 트럭 운송의 제한이다.
지방 정부가 엄격한 코로나19 통제 정책을 시행한 데다가 규정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상하이를 오가는 트럭 운송은 사실상 중단되다시피 한 상태다.
정보제공업체 '윈드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이달 19일 현재 상하이를 통과하는 일일 트럭 물동량은 봉쇄가 시작된 전달 28일보다 79.5%나 급감했다.
이로 인해 중국 상품을 수입하는 전 세계 물류도 큰 타격을 받았다.
일본 물류업체 '유센 로지스틱스'는 최근 처리한 화물량이 평소의 6%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미국 화물 운송업체 '플렉스포트'에 따르면 아시아 공장에서 출발한 상품이 미국 창고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111일로, 역대 최장 기록인 올 1월의 113일에 근접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기 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또 유럽 내 창고에 도착하는 기간은 평균 118일로 미국보다 더 길었다.
중국발 '물류 대란'은 향후 몇 개월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기업 공급망 모니터업체 '오버홀'의 안드레아 황은 봉쇄가 다음 달 초순이나 중순까지는 완화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자동차와 소비자 가전 등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6∼7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봉쇄로 애플, 테슬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제품 생산도 영향을 받고 있다.
애플의 중국 내 최대 협력업체인 대만 폭스콘은 상하이에서 약 51㎞ 떨어진 장쑤성 쿤산시에 있는 공장 4곳 중 2곳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지난 20일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쿤산은 전자부품의 핵심 제조 기지로, 폭스콘을 비롯해 대만 전자 회사들이 많이 있다.
중국 봉쇄로 인한 생산 중단의 여파로 애플 노트북 맥북의 일부 모델 구매자들은 제품 배송을 최장 2개월 기다리게 됐다.
테슬라의 상하이 공장도 약 3주간 조업을 중단했다가 직원이 공장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자는 등 숙식을 공장 내에서 해결하는 폐쇄루프 방식으로 지난 19일 가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보유한 부품 재고가 약 1주일 치에 그쳐 정상 조업이 얼마나 가능할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한국GM이 이달 들어 중국산 부품 수급 차질로 부평 1공장 가동 시간을 단축하고 아모레퍼시픽 등 여러 기업의 현지 공장이 조업을 중단하는 등 산업계 전방위로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물류 대란은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물가의 상승세를 더 부추길 우려가 크다. 중국에서 완제품뿐 아니라 원료·부품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미국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미국 수입품의 18%가 중국산이고, 컴퓨터와 전자제품에 한정하면 중국산 비중은 35%로 더 커진다.
사무자동화 기술회사 '재거'의 짐 뷰로 최고경영자(CEO)는 많은 미국 제조업체가 원자재와 부품을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어 이번 사태로 중요한 전자·기계류 부품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급망 소프트웨어 회사 '킬바'에 따르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운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7%에 이르며, 항만에서 화물 처리가 지연되면 대개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향후 수개월 안에 중국 내 물류 상황이 정상화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동안 중국 내에서 쌓였던 물량이 한 번에 전 세계로 쏟아져 나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항구들이 이를 일시에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장 가동 재개로 작년 하반기와 같은 미국의 공급망 혼란이 재연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 나오고 있다.
리스크정보 제공업체 '서플라이 위즈덤'의 빅터 마이어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다음으로 물류 대란을 겪게 될 곳으로 미국 서부 해안의 로스앤젤레스항과 롱비치항을 꼽으면서 그 이유로는 억눌렸던 화물 수요가 이 두 항구에 몰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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