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속 민심 폭발…정치적 부담 느끼는 시진핑, 상하이행 주저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상하이 전면 봉쇄 32일째를 맞은 28일 밤. 도시의 여러 주택단지에서 냄비 같은 물건들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봉쇄 속에서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하이 주민들이 각자 자기 집 베란다에서 냄비, 스테인리스 대야 같은 물건을 두드리며 식료품 등 물자 공급을 제대로 해 달라며 집단 베란다 시위에 나선 것이다.
29일 상하이 주민들에 따르면 전날 밤 집단 항의는 특정 지역이 아닌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건너편 아파트 동 벽면에 '우리는 물자가 필요하다'는 글씨를 비춘 곳도 있었다.
기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냄비 두드리기 시위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주민이 단체 대화방에서 당국의 물자 보급 문제를 노골적으로 성토했다.
한 주민은 갇힌 돼지가 텅 빈 사료통을 계속 입으로 툭툭 치는 짧은 동영상을 올렸다. 은유의 방식으로 식료품 공급난을 비판한 것이다.
봉쇄 장기화로 식료품 공급망이 무너진 상하이에서는 심각한 식료품 공급난이 계속되고 있다. 공급 부족으로 주요 인터넷 슈퍼의 주문은 매일 새벽 시작 동시에 마감된다. 대부분 주민이 단지별 식료품 공동 구매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상하이 봉쇄 시작 후 특정 단지에서 냄비 두드리기식 항의가 벌어진 적이 더러 있었지만 이번처럼 도시 전역의 시민들이 동시에 단체 항의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서방과 같은 집회·시위의 자유가 없고, 당국의 통제가 철저한 중국에서 시민 다수가 당국에 직접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한 달 이상 계속된 봉쇄로 신체의 자유를 극도로 제약당한 채 심각한 식료품 공급난을 겪는 2천500만 상하이 주민들의 불만이 이미 임계점을 넘었음을 보여준다.
한 주민은 웨이보에 올린 글에서 "주민들이 갇힌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먹을 것을 살 곳이 없고, 인터넷에 있는 물건은 부족해 손에 넣을 수가 없다"며 "사람들이 항의하는 것을 탓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하이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인 항의가 가능했던 것은 당국의 감시 속에서도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인 위챗을 통해 알음알음 항의 시위 계획이 시민들 사이에 널리 전파됐기 때문이었다.
상하이 창닝구 주민은 연합뉴스에 "단지 주민 전체 대화방에는 공안이 들어와 들여다보고 있다"며 "물품 공동 구매를 위한 별도의 방에서 항의 소식에 관한 내용이 올라와 알 수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시위를 앞두고 인터넷에서는 지역별 시위 시간과 방식을 알리는 포스터가 조용히 확산했다. 포스터에는 '솥을 깨뜨려 물자를 욕구하자'는 구호와 함께 28일부터 봉쇄가 해제되는 날까지 매일 밤 베란다 시위를 이어가자는 제안 내용이 담겼다.
일부 포스터는 인공지능(AI)으로 이뤄지는 자동 검열을 피하기 위한 듯 '음악회'라는 제목이 달리기도 했다. 중국의 대표적 소셜미디어인 위챗에서는 AI가 실시간으로 검열을 해 민감한 단어가 포함된 정보 전달을 자동으로 차단한다. AI 감시 기술의 발전으로 텍스트뿐만 아니라 포스터 같은 이미지 속의 글자까지도 실시간으로 식별해낸다.
동시다발 시위가 벌어지자 상하이 여러 곳에서 난리가 났다. 한 상하이 주민은 "우리 단지에서도 냄비 두드리기 항의가 벌어져 주민위원회가 급히 달려와 바로 물자를 보급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당국은 주민들에게 이번 집단 항의가 '외부 세력의 준동'에 의한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대처는 시민들의 더욱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한 주민은 웨이보에서 "항의하는 사람을 '외부 세력'이라고 하는데 정말 웃음이 나온다"며 "당신이 불만을 가지면 곧 '외부 세력'이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제수도'로 불리는 상하이에서 민심이 심각하게 악화하는 것은 올가을 20차 당대회를 통해 장기 집권을 공식화하려는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큰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
사실상의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에서도 수십년에 걸쳐 유지된 집단지도 체제와 임기제를 무력화하는 권력 제도의 개편은 매우 민감한 일이어서 전국민적 차원의 지지를 확보하는 모양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악화한 여론에 부담을 느낀 탓인지 만기친람식으로 나라의 모든 중대 사안을 직접 챙겨온 시 주석이 유독 상하이 코로나 대유행 사태에서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시 주석은 지난 13일 하이난성 시찰 도중 '제로 코로나'를 철저히 견지하라고 지시하고 나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공개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시 주석을 포함한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 누구도 아직 상하이를 방문하지 않고 있다. 상하이 현지에서 중앙을 대표해 상황에 대처하고 있는 지도자는 보건 담당 쑨춘란 부총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큰 위기인 상하이 사태 속에서 최고 지도부 중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2020년 우한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진행 중일 때도 리커창 총리와 시 주석이 각각 우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중국 최고 지도부가 정치적 부담이 큰 상하이행을 주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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