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하면 인터넷 검열 사라진다'는 글 온라인에서 유포
협정문에 관련 조항 없어…"정당한 목적의 정책은 유지"
(서울=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유경민 인턴기자 = 우리나라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기로 한 가운데 온라인상에서 'CPTPP에 가입하면 해외 성인사이트를 차단할 수 없다'는 글이 유포되고 있다.
작성자는 "가입하게 된다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던 비이성적인 인터넷 검열은 모두 사라질 것"이라며 "지금까지 성인이 성인물을 볼 수 없도록 검열하던 나라였는데 이런 상황은 몇 년 내로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CPTPP 가입을 막기 위해 가입국의 핵심 이행 사항으로 '규제 없는 인터넷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선 해외 성인사이트를 차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작성하는 온라인 백과사전 '나무위키'에도 이 같은 주장이 등록돼 있다.
이런 주장의 진위를 따져보기 위해 CPTPP 협정문을 살펴봤다.
30개 장(Chapter)중에서 전자상거래에 관한 의무를 규정한 14장이 해당 주장과 가장 관련성이 있는데, 이 장은 회원국 간 자유로운 데이터 이동, 디지털 제품에 대한 비차별적 취급, 온라인 소비자 보호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디지털 제품의 무역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목적이어서, 인터넷 규제를 모두 없애야 한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최원엽 미주통상팀장은 "규제를 다 없애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며 "정당한 목적을 가진 정책은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따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4장 11조에는 '회원국이 전자적 방법에 의한 정보 전송에 관한 자체적인 규제 요건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근거 없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중국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과도한 디지털 규제 때문에 CPTPP에 가입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우리나라 역시 CPTPP에 가입하려면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인터넷 단속이 심각한 중국과는 다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주요 인터넷 웹사이트나 소셜미디어 웹사이트 1천 개 가운데 170여 개를 차단하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블룸버그, 독일 도이체 벨레와 같은 언론뿐 아니라 페이스북, 왓츠앱,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차단되고 있다. 또한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 아마존과 같은 주요 전자상거래 사이트 접속도 막고 있다.
중국이 이와 같은 규제를 유지한 채 CPTPP에 가입할 경우, 회원국 간 자유로운 디지털 제품 무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회원국이 중국의 CPTPP 가입을 반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안덕근 교수는 "정책적으로 합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당연히 정부가 음란물 등 불법·유해 사이트를 제한할 수 있게 돼 있다"며 "구글, 페이스북 등을 제한하는 등 과도한 목적의 검열을 하는 중국은 가입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나라 가입 심사 과정에서 이런 규제가 문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과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해외 음란물·도박 사이트 등을 차단하고 있다. 정보통신서비스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정보통신망법 44조에서 규정하는 불법정보에는 △음란 △명예훼손 △사이버스토킹 △해킹·바이러스 유포 △청소년 유해 매체물 △도박 등 사행행위 △개인정보 거래 △국가기밀 누설 △범죄 관련 정보 등이 포함된다.
다른 국가에도 불법 정보의 유통을 막는 규제는 존재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9년 4월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OECD 국가 중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호주, 터키 등의 국가가 아동청소년음란물과 불법 저작물 등을 불법 정보로 규정하고 규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PTPP 회원국인 호주도 정부가 아동청소년음란물, 불법저작물, 테러선동정보 등의 불법 정보에 대한 접속 차단 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역시 CPTPP 회원국인 일본은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 또는 법원의 명령에 근거해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김미정 디지털유해정보대응과 과장은 "외국은 모든 걸 다 허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며 "음란물을 규정하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지만 많은 국가에서 아동청소년음란물이나 성착취물, 테러 등에 대한 정보는 강하게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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