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군사력으로 초강대국 부활 시도했지만 부실 민낯"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 소련 붕괴의 치욕을 딛고 대(大)러시아의 부활을 일궈낸 자신의 치적을 선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드러난 건 군인으로서의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채 졸전을 거듭하는 러시아군의 민낯이었다. 그간 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초강대국'을 자처해 온 러시아 입장에선 이를 뒷받침할 핵심 근거를 상실할 처지가 된 셈이라고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했다.
28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 후 두 달여 간 1만5천여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추산된다.
파괴된 전차와 장갑차 등 기갑전력은 최소 1천600여대이고, 수십대의 군용기를 잃은 것은 물론 흑해 함대의 기함 '모스크바'까지 침몰해 자존심에 먹칠을 했다.
손실 그 자체도 심각하지만, 이 과정에서 러시아군이 보인 행태도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과 군 최고지휘부는 침공 직전까지도 관련 계획을 공유하지 않는 등 휘하 장교와 병사들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유통기한이 지난 보존식 따위를 지급받은 러시아군 병사들은 탱크 등 군장비를 유기했고, 공군은 압도적 전력을 보유하고도 우크라이나군을 상대로 제공권을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현대적 군대의 기본인 공군과 전차, 보병의 유기적 협동도 찾아볼 수 없었다.
러시아군 점령지에선 고문과 강간, 살인이 횡행했다. 지휘관들은 전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민간인 피해를 아랑곳하지 않고 주요 도시들에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러시아군은 결국 키이우(키예프) 등 주요 도시가 밀집한 북부에서 패퇴해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병력을 물려 설욕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앞으로 몇 주간 돈바스와 남부에서 벌어질 양국군 간의 전투는 이번 전쟁의 향방을 가를 뿐 아니라 땅에 떨어진 러시아군의 평판이 얼마나 회복될 수 있을지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하지만, 설사 러시아군이 돈바스에서 승리한다 해도 푸틴 대통령이 입은 타격을 되돌리긴 쉽지 않아 보인다.
러시아는 세계 1위의 국토 면적을 자랑하지만 인구(약 1억4천500만명)나 경제 규모는 광활한 땅덩이에 미치지 못한다.
국가별 인구 순위는 방글라데시(8위)와 멕시코(10위) 사이이고,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 규모는 브라질(10위)과 한국(12위) 사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외교력과 소프트파워도 약화 추세다.
국제무대에서 초강대국으로 인정받으려 노력해 온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세계 최상급이라고 평가받는 영역인 '군사력'에 주로 의존했다.
2008년에는 조지아군이 분리 독립하려는 남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을 공격하자 조지아를 침공했고,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해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다. 내전 중인 시리아에도 군을 파병했으며, 러시아 용병들이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활동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푸틴은 자국의 부족한 점들에 집착하는 세계적 불한당"이라면서 "이는 경제와 외교적 역량을 키우고 활용해 결과를 내온 중국과는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그에게 러시아군이 실제로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는 인식은 정치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에서의 망신은 러시아의 초강대국 지위 주장을 뒷받침할 핵심 보루를 흔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러시아가 초강대국임을 내세울 수 있는 마지막 영역인 생화학 무기와 핵무기에 푸틴 대통령이 눈을 돌리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서방 각국 정부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아직은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겠지만, 러시아군이 보유한 재래식 수단이 떨어져 갈수록 (생화학·핵무기 사용의) 유혹이 분명히 커질 것"이라면서 "돈바스 전선의 교착은 그저 다음 전투의 준비일 뿐일 수 있고, 이는 오늘 현재보다 훨씬 위협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hwang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