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경제난에 양국관계 경색시킨 사건 무마…인권단체 반발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회동했다고 AFP, AP 통신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암살조에 의해 살해된 지 3년 반 만에 사우디를 찾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8년 10월 발생한 카슈끄지 사건의 배후에 '사우디 최고위급'이 있다면서 사실상 빈살만 왕세자를 지목한 바 있다.
사우디 국영 SPA 통신은 전날 사우디 제2의 도시 제다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살만 왕세자와 포옹하는 사진을 내보냈다.
SPA 통신은 양 지도자가 "사우디-터키 관계를 모든 분야에서 발전시킬 방안을 재검토했다"고 전했다.
터키 관영 매체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왕세자의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과 앉아 회동하는 장면을 실었다.
카슈끄지 사건 이후 양국 교역이 급감하는 등 관계가 악화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칼럼 기고가로 빈살만 왕세자의 정적 탄압에 비판적이던 카슈끄지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사우디 암살조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됐으며 그 시신이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
터키 검찰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3주 전 카슈끄지 살해 사건과 관련된 사우디 용의자 26명에 대한 궐석 재판을 사우디 법원으로 이첩해 버렸다. 그러나 사우디는 문제의 사건을 주도한 관리들에 대해 한 명도 제대로 유죄 판단을 내리지 않아 광범위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인권단체들과 카슈끄지 부인은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처럼 입장을 180도 전환한 것은 20년 만에 찾아온 터키 경제 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터키는 공식 인플레이션만 61%에 달하고 리라화의 미국 달러화 대비 가치는 지난해 44% 하락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내년 총선을 앞둔 가운데 걸프 지역 아랍 부국들과 관계 개선을 통해 투자 유치를 도모하고 있다.
사우디 입장에선 유가 상승으로 오일 달러가 충분해 투자 여력이 있는 데다가, 카슈끄지 사건 등으로 빈살만 왕세자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사이가 긴장된 점이 이번 관계 개선의 배경으로 꼽힌다.
또 카슈끄지 사건으로 실추된 빈살만 왕세자의 이미지를 세탁하고 같은 이슬람 수니파 강국인 터키를 자신의 편에 끌어들여 시아파 국가인 이란에 맞선다는 계산도 깔려있다고 AP는 전했다.
터키는 앞서 사우디와 가까운 아랍에미리트(UAE)와 관계를 개선했으며, 사우디도 터키와 가까운 카타르와 갈등을 해소했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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