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는 '서방의 희생자'로 묘사…전승절 계기, 2차대전·우크라전 유사성 부각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러시아와 서방 간의 국경 전쟁'으로 프레임을 새롭게 짜고 있다고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크렘린궁과 러시아 국영 언론들은 자국을 '서방의 희생자'로 묘사하면서 이번 전쟁이 소규모 국경 전쟁을 넘어 글로벌 충돌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앞서 서방은 이번 전쟁이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억제할 기회로 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강화해왔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서방이 궁극적으로는 러시아를 견제하거나 파괴하려는 의도라며 핵공격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보복을 위협해왔다.
최근 크렘린궁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 가능성에 준비하는 모습이다. 특히 이달 9일 제2차 세계대전 기념일인 전승전을 이용해 2차대전과 우크라이나 전쟁 간의 유사성을 부각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크렘린궁과 러시아 국영 언론들은 최근 몇 주에 걸쳐 러시아는 서방의 피해자라며 러시아 방어의 필요성 등을 꾸준히 언급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주 "러시아 봉쇄 정책을 추구하는 세력은 너무 크고 독립적인 국가를 원하지 않는다"며 "이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그들"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다른 나라가 개입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전략적 위협을 조성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보복 공격이 번개같이 빠를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러시아는 이를 위한 모든 수단을 갖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그것을 사용할 것"이라고도 했다.
러시아의 유명 뉴스 앵커, 토크쇼 진행자 등도 우크라이나에서의 손실로 인한 '끔찍한' 결과를 경고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방송 RT의 편집국장 마르가리타 시모냔은 토크쇼에서 "세계 3차 전쟁은 더욱 현실적"이라며 "가장 놀라운 것은 결국 이 모든 것이 핵공격으로 끝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경제적 지원을 러시아에 대한 위협으로 정의하는 푸틴 대통령에게 있어, 5월 9일 전승절은 전쟁에 대한 대중의 결의를 유지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회다.
2차대전은 소련인구 약 2천700만명이 숨진 엄청난 시련이었다. 사실상 모든 러시아인 가족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푸틴 대통령은 2차대전을 이용해 애국주의를 북돋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해왔다.
그는 지난해 "적은 소비에트 정치 시스템뿐만 아니라 국가로서 우리를 파괴하고 우리 국민들을 몰아내길 원한다"며 단합을 호소했다. 올해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특별 군사작전'이라 부르며 우크라이나 지도부를 나치로 묘사하고 침공을 정당화했다.
국영 언론 역시 자국민들에게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부패하고 무능한 지도부 아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일조했다.
러시아의 한 정치학 싱크탱크 책임자 에브게니 민첸코는 러시아인에게 우크라이나인은 '고통받는 대상'으로 인식된다며 "교활한 서방이 우리에게 맞서 싸우도록 강요한 우리의 형제들"이라고 설명했다.
매년 전승절 퍼레이드에 러시아인들은 2차대전에서 희생된 가족 등의 영정을 들고 '불멸의 연대 행진'에 참가한다. 올해 몇몇 도시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숨진 병사들의 사진을 들고 참가해도 된다고 공지했다. 러시아인들에게 2차대전과 우크라이나 전쟁 간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전 참전 군인을 모집하는 광고도 곳곳에 등장했다.
시베리아 지역의 튜멘에서 한 지역언론은 시내에 등장한 병사 모집 광고 영상을 내보냈다. 영상은 "여기 일자리가 있다"며 군복 차림의 남자들이 공격용 소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채용 사이트에 따르면 4월 15일 기준 러시아에서 입대 모집에 대한 검색은 침공 나흘 전인 2월 20일에 비해 7배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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