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직후 안락한 삶 버리고 귀국…"러 위해 일한 것 회개"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푸틴은 법에 따라 재판에 회부돼 교수형에 처해야 합니다."
러시아 국영은행인 가스프롬방크에서 부회장까지 오른 이고리 볼로부예우는 러시아가 저지른 전쟁 범죄와 관련해 정의가 실현되길 바란다며 단호히 말했다.
1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볼로부예우 전 부회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부와 명예를 포기하고 고향인 우크라이나를 선택했다.
우크라이나 북동부 도시 오흐티르카에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대학을 다녔고, 졸업 무렵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러시아 시민권을 받았다. 이후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에서 20년 넘게 일하다가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가스프롬방크로 옮겼다.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그는 러시아와의 국경 인근인 고향 마을에 포탄이 떨어지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받았다.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호텔에서 지낸다는 볼로부예우 전 부회장은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며 "마치 안락한 극장에서 공포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고 텔레그래프에 당시 심경을 전했다.
그는 "사람들이 전화해 '러시아군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 가스프롬방크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당신이 공격을 멈추기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냐'고 물을 때 정말 비참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로 이주할 생각을 해왔지만 가족에 대한 의무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그는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에 우크라이나행을 결심했다.
그는 "더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며 "가족과 조국 중에 선택을 해야만 했고, 조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차를 몰고 국경에 가서 자신의 BMW 승용차를 버리고 30마일(약 50㎞) 거리의 고향 마을까지 걸어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나 러시아군 드론의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라트비아 수도 리가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우크라이나 시민권이 없는 볼로부예우 전 부회장은 우크라이나에 어떻게 입국했는지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를 떠나는 것은 쉬웠지만, 우크라이나에 들어오는 것이 달에 가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고만 했다.
그는 러시아를 떠나면서 소지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인 8천파운드(약 1천270만원) 상당의 현금만 가지고 나왔다. 출국 후 그의 가스프롬방크 계좌 접근은 차단됐고, 은행 앱을 확인하니 예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크라이나에 도착해 가장 먼저 그는 키이우 영토방위군에 자원했으나, 군대 경험이 없는 50대는 당장 필요 없다는 답을 받았다.
러시아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던 그는 2012년 대선에서는 푸틴에게 투표했다. 그러나 2013~2014년 일어난 우크라이나의 친유럽연합(EU) 세력 봉기와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이 조국에 대한 크렘린궁의 적대적인 정책에 눈을 뜨게 했다.
8년간 내적 혼란에 빠져있었다는 그는 "나는 단순히 러시아에서 일한 게 아니라 가스프롬에서 일했다. 러시아라는 국가를 위해 일한 것"이라며 이를 회개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것"이라며 "지금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떠나느니 길바닥에서 자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전쟁 전 내가 누렸던 삶은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해 신경 쓰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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