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피란민들을 태운 버스에 남자 어린이가 앉아 있습니다.
어둑한 버스 안만큼이나 어린이의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턱을 괸 듯한 자세가 고민이 있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버스가 생과 사의 경계를 건너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 어린이는 알까요.
우리나라의 어린이날(5일)을 이틀 앞둔 이날, 이 어린이를 태운 버스가 향하는 곳이 놀이동산이나 동물원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날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탈출한 민간인은 100여명으로 추산됩니다.
아조우스탈 제철소는 마리우폴을 지키는 우크라이나군의 최후 거점이었습니다.
러시아군의 집중적인 공격으로 마리우폴은 도시 전체가 90% 가까이 폐허가 됐습니다.
놀이터 부근에는 뛰어다니는 어린이들 대신 쓰레기만 가득합니다. 도시를 떠나는 시도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피란길에 오른 주민들은 마리우폴에서 북서쪽으로 약 230㎞ 떨어진 자포리자의 난민 센터에 도착해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6개월 된 아기를 안은 안나 자이체바는 우크라이나군이 통제하는 이곳에 도착한 뒤에야 비로소 긴장이 풀렸는지 왈칵 눈물을 쏟아냅니다.
아조우스탈 제철소 노동자 막심은 난민 센터에서 아들과 상봉했습니다.
아들을 친척들과 함께 먼저 떠나보냈던 아버지와 남겨진 아버지를 걱정했던 아들에게 그동안의 시간이 어떠했을지 부자의 표정에 역력히 드러납니다.
긴 여정에 지친 여자 어린이는 녹초가 된 듯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배가 고픈 아기는 엄마 품에서 젖병을 힘차게 빨고 있습니다. 꿀꺽꿀꺽 목 넘김 소리가 들릴 듯합니다.
미니밴을 타고 마리우폴을 탈출한 가족도 있습니다.
밴에 아이들이 한가득합니다. 마리우폴에는 여전히 수천 명의 민간인이 남아있습니다. 탈출을 기다리는 어린이는 얼마나 더 많을까요.
한 남자 어린이가 차창 밖을 바라보다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자 엷게 미소를 짓습니다. 차창에 댄 손이 마치 손을 흔드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군은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일부 민간인이 빠져나간 뒤 대대적인 공격을 재개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어린이 22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2일에는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의 한 기숙사에 살던 10대 소년이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에 맞아 숨졌습니다.
어린이날이 가까워지니 더더욱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눈에 밟힙니다. 그들의 안녕과 무사를 기원합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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